대법관 퇴임사에 담긴 '속풀이 고언(苦言)'…가인 김병로 "법관은 최후까지 정의의 변호사"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대법관들과 재판연구관들이 아무리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해도 이미 한계를 넘었다."


민일영 전 대법관은 16일 32년의 법관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그의 마지막 법관 인생은 '판사들의 꽃'인 대법관이었다. 헌법 제105조는 '대법관의 임기는 6년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으로 임기를 보장한 이유는 대법관 자리의 중요성을 상징한다.

대법관은 사회가 가야 할 방향을 설정한다. 하지만 대법관들은 법정이 아닌 곳에서 공개적으로 사회 현안에 대해 견해를 밝히는 경우가 드물다. 법관은 오직 '판결문'으로 말한다는 원칙을 실천하려는 경향 때문이다.


대법원장이 신년사나 각종 행사에서 축사(기념사) 등을 통해 견해를 밝히는 경우는 있지만, 개별 대법관들의 견해를 듣기는 쉽지 않다.

16일 대법원에서 퇴임사를 전하고 있는 민일영 전 대법관. 사진제공=대법원

16일 대법원에서 퇴임사를 전하고 있는 민일영 전 대법관. 사진제공=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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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의 속 얘기를 들을 기회는 바로 퇴임할 때다. 대법관은 임기 6년을 마무리하면서 대법원에서 퇴임식을 열고 그동안 다하지 못했던 얘기를 법조계와 국민을 향해 전달한다.


민 전 대법관은 대법관들의 살인적인 업무 강도를 강조하며 대법원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에 대한 국회의 협조를 당부했다.


그는 "선진 외국의 예에서 보듯 상고제한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우리의 딱한 현실에서는 국회에 계류 중인 '상고법원안'만이라도 하루빨리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논란을 부르는 현안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을 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대법관들은 오랜 시절 법관으로 지냈던 경험을 떠올리며 법원 내부를 향한 고언(苦言)을 내놓기도 한다. 지난해 3월 퇴임한 차한성 전 대법관은 "사회적 약자 등 대다수가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에도 사법제도의 따뜻한 햇살이 비칠 수 있도록 법관은 사람에 대한 배려와 사랑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신영철 전 대법관은 지난 2월 퇴임사를 통해 "약자를 옹호하는 것으로 보이는 판결이 다른 약자의 권리 신장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약자와 관련한 법관의 마음가짐에 대해 시각차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양창수 전 대법관은 후임 대법관에게 전하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9월 퇴임사를 통해 "대법관은 구체적인 사건과 같은 사건이 얼마나 있는지, 개별 당사자나 같은 이해관계를 가지는 사람들, 보다 일반적으로 사회의 한 부분이나 나라 자체의 됨됨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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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들의 퇴임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이다.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이자 가장 존경받는 법조인 중 한 명인 그는 1957년 퇴임사를 통해 이런 말을 남겼다.


"정의를 위해 굶어 죽는 것이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 수만 배 명예롭다. 법관은 최후까지 오직 '정의의 변호사'가 되어야 한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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