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그라군, 애디양과 만나 완전체되나
30대 남성 절반 발기부전.여성 3분의 1 성욕감퇴..남녀모두 性 행복 찾는 시대로
[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
여성의 성(性) 욕구는 금기어다. 남녀평등이 보편화된 요즘에도 '정숙'은 여인의 미덕으로 여긴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에 대한 담론은 '음란'하고, 특히 여성의 욕망은 '밝히는' 것으로 낙인찍히기 일쑤다.고통스러운 잠자리로 신혼의 단꿈이 깨져버린 새댁부터 남편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의무적으로 관계를 맺는 중년의 여성까지 성욕 감퇴를 질환으로 여기는 경우 드물다. 모두 쉬쉬하며 제대로 된 치료조차 포기한다.
최근 미국에서 허가받은 세계 최초의 여성 성욕감퇴장애 치료제 '애디(Addyi)는 여성 해방의 역사에서 마지막 관문을 열 수 있을까?
◇1998년, 남성 자존심 회복 사건 = 여성의 성욕구와 마찬가지로 과거에는 남성의 발기부전 장애도 공론화가 안됐다. 1998년 다국적 제약사 화이자가 세계 첫 발기부전치료제인 '비아그라'를 내놓으면서 고개 숙인 남성들의 말 못할 고민까지 드러나게 된 것이다.
매사추세츠 남성노화연구(MMAS:MassachusettsMaleAgingStudy)의 조사에서 발기부전의 전체 유병율은 52%에 달했다. 완전 발기부전은 10% 가량이지만, 중증도 발기부전은 10%, 경도 발기부전은 17%였다. 국내 연구에서도 30세 이상 남성의 52.2%가 발기부전을 호소했고, 나이가 많을수록 증가했다.
대부분의 의약품이 '사고'로 탄생했듯이 비아그라도 원래는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됐다. 임상실험 과정에서 발기부전의 효과가 있다는 점이 우연히 확인되면서 발기부전치료제로 나온 것이다.
비아그라는 정력이라는 의미인 비거(vigor)에 나이아가라(Niagara) 폭포를 합친 합성어다. 발기부전은 3개월 이상 만족스러운 발기가 되지 않는 장애로 비아그라는 이를 치료하는 의약품이지만, 이름 탓인지 정력제처럼 팔리고 있다.
비아그라의 성공을 계기로 남성 발기부전치료제가 줄줄이 출시됐다. 대한비뇨기과학회에 따르면 국내 발기부전치료제는 비아그라와 레비트라, 시알리스, 자이데나, 엠빅스 등 5종류에 달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남성 성장애 치료제는 24개다.
◇핑크 비아그라, 여성의 탈출구될까 = 여성의 성기능 장애 치료제의 개발이 늦어진 것은 그동안 금기영역인 탓이 크다. 이화의료원 김승철 원장(산부인과 교수)은 "그동안 성욕 감퇴로 찾아오는 환자는 한명도 없었다"면서 "부인암으로 인해 질건조증 등으로 성고통이 있는 환자도 먼저 물어보는 경우는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성욕장애로 고통 받는 여성은 의외로 많다. 애디를 개발한 스트라우트에 따르면 여성의 3분의 1 가량이 '저활성 성욕감퇴 장애(HSDD:hypoactive sexual desire disorder)'를 갖고 있다. 미국에선 여성의 3분이1이 HSDD라는 통계도 있다. 보수적인 국내 성문화를 고려할 때 우리나라에선 35% 가량이 성욕감퇴장애를 갖고 있는 것으로 의료계는 추정하고 있다.
애디도 이 HSDD를 치료하는 약으로 개발됐다. 미국 FDA가 정의한 HSDD는 대인관계의 어려움이나 고민으로 인해 성욕이 낮아진 상태로, 신체적인 문제나 질환, 다른 약물에 따른 부작용 등으로 성욕이 떨어진 경우는 해당이 안된다.
애디는 충동자극 호르몬인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 분비를 늘리는 대신에 성욕을 감퇴시키는 세로토닌 분비를 줄이는 제품이다. 분홍색 알약이어서 '핑크색 비아그라'로도 불리며 원래는 플리반세린이란 이름으로 알려졌다.
원래 우울증 치료제로 개발된 애디는 감정조절과 상황판단을 담당하는 전전두엽 피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타깃은 젊은 여성보다 성욕이 급속히 감퇴하는 폐경 전 여성이다.
하지만 애디의 부작용이 효능에 비해 크다는 지적도 있다. FDA는 기절, 저혈압, 메스꺼림, 피로, 불면증 등 부작용 우려 때문에 애디의 승인을 두 차례나 거절하기도 했다.
◇비아그라 VS 애디 차이점 = 성(性)의학에서는 성 반응을 성욕기(초기), 성 흥분기(중기), 오르가즘기(후기)로 나누는데 애디의 경우 성욕기에 작용하는 의약품이다. 비아그라의 경우 성 흥분 반응에 해당하는 (남성의) 발기를 유발한다.
애디와 비아그라는 작용 원리도 차이가 있다. 비아그라와 시알리스 등 남성용 발기부전 치료제는 혈관을 확장해 발기를 돕는다. 이에 비해 애디의 성분인 플리반세린은 뇌의 신경전달 물질에 영향을 줘 저하돼 있는 여성의 성욕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비아그라는 단 한 번의 복용으로 즉각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애디는 2개월 정도 꾸준하게 먹어야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애디의 성분인 플리반세린은 뇌에 작용하는 물질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남성의 경우 성욕을 좌우하는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여자에 비해 10~20배 정도 많이 분비되기 때문에 성욕 저하로 고민하는 경우는 적다.
애디의 출현이 여성의 탈출구가 될수 있을지는 아직까지 미지수다. 하지만 성욕감퇴로 인해 고통 받는 여성에게 치료할 수 있는 선택이 많아진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김태한 태비뇨기과 원장은 "발기부전 치료제도 모든 남성에게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여성은 심리적 영향을 받는 만큼 약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지만, 플라시보 효과도 있기 때문에 약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 긍정적인 데이터가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하나 이대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여성의 성기능장애는 15% 가량에 달하지만 치료를 하는 병원이나 치료법이 없어 포기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면서 "옵션이 많아지는 만큼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여성도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