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친람: 임금이 모든 정사를 친히 보살핌>
대통령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프레드 그린스타인 교수는 '위대한 대통령은 무엇이 다른가'라는 저서에서 대통령의 5가지 덕목을 강조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부터 빌 클린턴까지 현대 미국의 대통령을 역임한 11명의 업적과 스타일을 분석한 결과이다.
그린스타인 교수가 강조한 5가지 덕목은 ▲의사소통 능력 ▲통찰력 ▲감성지능 ▲정치력 ▲인지능력이다. 5가지 덕목으로 평가한 결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존 F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역대 가장 뛰어난 리더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나 리처드 닉슨에 대한 평가는 매우 인색했다. 평가가 갈린 가장 큰 요인은 소통 능력의 차이였다.
조선의 가장 뛰어난 국왕으로 꼽히는 세종도 소통의 달인이었다. 세종의 소통은 '광문(廣問)'이었다. 백성, 신하, 학자 등을 망라해 널리 묻는 소통 방식이다. 광문을 거친 세종은 신중하게 숙고하는 '서사(徐思)'를 거쳐 정밀한 대안을 만드는 '정구(精究)'를 완성시켰다. 명석함과 통찰력이 남달랐던 세종조차 소통의 중요성을 깨닫고 귀를 열어 두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저마다 다른 소통 방식을 보여줬다. 철권정치의 상징인 전두환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그에게 가장 성공적인 소통 사례를 든다면 경제정책을 참모들에게 완전히 맡긴 점이 아닐까 싶다. 고유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마이너스 경제성장률 등 갓 출범한 5공화국을 뿌리째 흔들었던 경제위기는 출중한 참모의 등장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이 바로 그 장본인이다. 경제에 대해 문외한이나 다름없었던 전 대통령은 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의 조타수로 김재익을 발탁했다. 전 대통령이 김재익을 청와대로 불러들이면서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고 말한 일화는 지금도 종종 회자될 정도이다. 정치적 직관력과 추진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김영삼 대통령은 참모들과의 소통을 즐긴 지도자였다. "머리는 빌리면 된다"는 유명한 어록을 남긴 김 대통령은 참모들을 중시하고 활용을 하되 최종 결정은 자신이 책임지는 유형이라 할 수 있다. YS 시절 청와대 참모들은 정국 현안에 대한 보고서를 자유롭게 올렸으며 필요할 경우 대통령과의 독대도 가능했다. 주로 듣는 소통방식을 구사한 것이다.
역대 대통령 중 통찰력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 김대중 대통령은 토론을 통해 소통을 실현했다. 사실 김 대통령의 통일관이나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관은 웬만한 참모들보다 식견이 높은 편이었다. 그래도 DJ는 참모들과의 토론을 피하지 않았다. 평소의 엄청난 독서량을 통해 만들어진 통찰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YS와는 달리 설득하는 방식의 소통이다.
미국이나 한국의 대통령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은 '불통'이라는 올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딱해 보이는 탓도 크다. 대통령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다. 내가 모르는 분야가 있으면 과감히 권한을 이양하는 것도 방법이다. 통찰력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만기친람(萬機親覽)'식 통치방식은 많은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이 종종 국민들의 가슴을 멍들게 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두 가지 문제점이 큰 원인이라고 본다. 우선 상황에 대한 인지력이 부족하고 소통의 방식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극장을 방문해 관객과 영화를 같이 보고 인자한 미소를 날려주는 방식은 진정한 소통이 아니다. 각료나 참모들과 얼굴을 맞댄 채 고성이 오갈 정도로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쟁하는 소통 방식을 국민들은 원할 것이다.
참모들과의 대면을 꺼리고 서면으로만 보고받아도 충분하다는 박 대통령의 소통 방식을 그린스타인 교수가 평가한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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