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들, '건설적인 행사'도 생략…수주기원제 사라지는 까닭은
건설업계 장기간 경기침체로 축소 또는 안전기원제만 열어
[아시아경제 윤나영 기자] "해가 바뀌면 설 전에 꼬박꼬박 임직원들이 모여 산행을 하고 정상에서 고사를 지냈습니다. 수주 많이 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풍습이죠. 이젠 그것도 과거의 추억이네요."
"음과 양이 조화를 이뤄야 좋은 기운을 받아 수주를 많이 할 수 있다고 해서 연도별로 번갈아 양기와 음기가 강한 산을 구별해 번갈아 올라가기도 했어요. 정말 중요한 연초의 정례 행사였죠."
건설업계의 오랜 관행인 수주기원제가 사라지고 있다. 새해를 맞아 앞다퉈 건설사 임직원이 함께 산을 올라 한 해 동안의 수주목표를 초과달성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기원하던 모습이 귀해진 것이다.
이런 변화는 최근 2~3년 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수주기원제에는 사장을 비롯해 주요 임원과 직원들이 동반하는 통에 팀웍을 다지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건설산업의 위축과 원가절감 등의 추세에 밀려 아예 수주기원제를 없애는 건설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보통 주말에 행사를 진행하는 탓에 휴식을 빼앗는다는 지적이 반영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D사 관계자는 "최근에는 수주기원제 대신 각 공사현장에서 안전을 기원하는 안전기원제만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아무래도 건설경기가 장기간 침체돼 떠들썩하게 수주기원제를 할 형편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수주기원제를 하더라도 규모를 대폭 축소하거나 각 사업부별로 간소하게 마무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주기원제는 물론 시무식조차 하지 않는 건설사까지 생겨났다. S사 관계자는 "지난해 주택시장이 살아나 숨통이 조금 트이긴 했지만 여전히 업계 분위기가 예전 호황기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며 "그룹 차원에서도 올해 의미가 적은 행사는 자제하자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잇단 담합처분과 과징금 부과, 영업정지 처분 등이 잇따라 심리가 위축된 점도 수주기원제를 축소시킨 요인으로 지목된다. 이미지가 나빠진 상태에서 수백명의 임직원들이 대거 산에 오르는 행사를 하기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H사 관계자는 "새해 첫날을 비롯해 매해 초에 기운이 좋다는 전국의 산을 오르던 것이 습관처럼 배었는데 아예 사라진 것 같아 한켠으론 씁쓸하다"면서 "대신 마음에 맞는 동료들끼리 또는 동아리 차원에서 산에 오르는 경우는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을 끝으로 대형 건설사 임원에서 물러난 박 모씨는 "민간이나 공공부문 모두 일감이 줄어들어 '수주 기원한다고 수주가 되는 것도 아니지 않으냐'는 자조 섞인 얘기마저 나온 적이 있다"면서 "앞으로도 대외적으로 드러나는 행사를 자제하는 분위기는 계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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