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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2015년 어린 양에게

최종수정 2014.12.31 11:05 기사입력 2014.12.3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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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

2015년이다. 양의 해다. 양은 순진무구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부드러운 털에 나지막한 울음소리를 가진 동물이다. 웃는 듯한 눈을 가진 양은 모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동물이다.

이 순진무구한 양은 제물의 희생이 된다. 앙탈을 부리지 않기에 칼을 맞는다. 제단에 오른 그의 피로써 산 자들은 죄를 갚는다. 양에 대해 죄의식을 갖는 것은 아니며 은혜를 갚겠다는 생각도 별로 없다. 모순이다. 그래도 엄연한 현실이다. 부인하기 어렵다. 약육강식과 강자독식의 세계에, 양의 탈을 쓴 늑대, 눈웃음치는 승냥이가 활개하는 세상에 양이 살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양임을 포기할 수는 없다. 영국 낭만파를 연 혁명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양을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에 비유했다.

"그분도 너와 이름이 같지. 그분도 자기를 양이라 부르셨지. 그분도 온유하고 겸손한 분. 그래서 어린아이가 되셨지. 난 어린아이, 너는 양. 우리는 그분의 이름으로 불린단다. 어린 양아, 하나님이 너를 축복하시길."

블레이크는 죄를 탓하는 엄한 신이 아니라 스스로 양이 되고 어린아이가 되어 피조물을 축복하는 온화한 하느님의 모습을 그려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200년이 지난 오늘날 늙은 블레이크가 남긴 이 시가 큰 울림을 남기는 것은 세상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풀밭에는 간교한 뱀이 우글거리고, 풀밭 저 너머에는 극악한 늑대들이 우글거린다. 숲 속에는 양들의 뼈가 널부러져 있다. 늑대들은 토실토실한 양의 살을 노려보며 침을 흘리고 있다. 심지어 잡아먹은 양의 탈을 쓰고 양떼 사이를 활보하는 늑대들도 부지기수다. 늑대들은 양들이 자기를 못알아본다며 비웃을 뿐이다.

양은 '흑안(黑顔)'을 구분하지 못한다. 양은 '교언영색(巧言令色)'을 구분하지 못한다. 양은 '감언이설(甘言利說)'을 구분하지 못한다. 양은 오로지 '순진무구(純眞無垢)'일 뿐이다. 간교하고 사악한 늑대들은 순진무구함이 가진 힘, 파괴력을 본능처럼 알기에 비웃고 외길로 꾀어 파멸시키려 한다. 그렇기에 양들은 희생당하기 일쑤다.

나이 들어 양처럼 살기는 대단히 어렵다. 어렸을 때의 순한 마음이 가진 울타리가 허물어졌을 수도 있고, 힘든 세상살이에 스스로 그렇게 됐을 수도 있다. 나이는 지혜를 가져다 주지만 순수함, 선함의 상실이라는 값비싼 대가로 치러야 하는 게 보통이다. 순수함을 유지한다는 것은 여간 힘들지 않다. 자주 조소(嘲笑)를 받고 나잇값을 못한다거나 어리석기 짝이 없다는 비아냥을 듣기 십상이다.

그래서 부질없는 짓인 줄 알지만 올해 소망을 감히 가져본다. 블레이크가 읊은 대로 양이 돼보자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양의 마음을 가져보자는 게 그것이다. 이는 대단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네가 생각하는 자기가 자기가 아니라 남이 보는 자기, 거울에 비친 자기가 진정한 자기"라는 시쳇말을 깨보려는 과감한 욕심의 표현이다.

말은 쉽고 실천은 어렵다. 또 해가 바뀌면 딴생각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얼굴이야 나이를 피해가기 어렵지만 마음을 갈고닦아 보는 일은 나이와 무관한 일이다. 거친 세상에서 양이 되는 길은 마음 수양으로 귀착한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는다'는 공자 말씀은 마음 수양의 결정체다. 성현인 공자님이 아니고서도 좀체로 도달하기 어렵지만 못오를 나무는 아니지 않는가?

예상치 않게 달려드는 온갖 난제는 철벽같은 마음가짐이 없으면 풀기가 불가능하다. 그것은 선한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늑대가 날카로운 이빨을 감추고 꼬리를 살랑거리는 개로 탈바꿈시키는 법을 터득하는 출발점이다. 그렇기에 용맹정진이 필요하다. 항상 벼러서 시퍼런 빛을 발하는 칼날이 되도록 해야 한다.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양들이 내게 해준 말이다.


박희준 외교ㆍ통일 선임기자 jack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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