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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보고서 리뷰]'빈집이 독방 같아서인지 밤새 TV틀어놔'

최종수정 2014.09.08 09:05 기사입력 2014.09.0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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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피해 할머니 증언③

박옥선 할머니.

박옥선 할머니.

[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주상돈 기자, 김민영 기자, 김보경 기자] #21. 박옥선 '17살 中으로 강제동원돼 어렵게 국적 회복'

1924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박옥선 할머니는 17세 때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무링(穆陵) 인근으로 강제 동원됐다. 당시 일본 이름은 아키코. 4년 동안 위안소 생활을 하다가 해방 후 중국에 정착했다. 사망신고가 돼 있던 터라 어렵게 국적을 회복하고 2003년 4월 주민등록증을 취득했다. 2002년 8월 나눔의 집에 입소한 할머니는 향수병을 달래기 위해 개 두 마리를 키우고 있다.
아흔의 나이에도 방문객이 오면 대화가 가능할 만큼 정정한 편이다. 앓고있는 지병도 없다. 할머니 소원은 중국에 남아있는 손주들을 한국에 데려오는 것. 손자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손자 또래가 나눔의 집에 방문하면 손을 덥석 잡으며 꽤 반가워하신다. 헤어질 때는 연신 "또 놀러오라"며 이별을 아쉬워하는 할머니다.

박○○ 할머니.

박○○ 할머니.

#22. 박○○ '이곳저곳 떠돌다 미군 기지촌서 생활'

박○○(92) 할머니는 공개를 꺼리는 데다 증언집도 따로 없어 동원 시기나 동원 장소 등은 정확히 알 수 없다. 시민단체 관계자에 따르면 박 할머니는 위안소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 부모님이 돌아가신 친정집을 나왔다. 이곳저곳을 떠돌던 할머니는 이후 미군 기지촌에서 지냈다고 한다. 박 할머니의 신산한 삶을 버티게 해 준 건 혼혈 아들이었다. "어느 때는 어린 아이게 먹일 게 없어 사흘을 굶긴 적도 있어요."
2001년까지만 해도 월 5만원짜리 사글세 문간방이 할머니의 거처였다. 한국정신대연구소 관계자에 따르면 할머니를 처음 만난 1993년에는 다 쓰러져가는 오막살이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 외로운 삶을 이어오던 박 할머니는 이민간 아들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살고 있다.

박○○ 할머니.

박○○ 할머니.

#23. 박○○ '스무살 때 끌려가…수치심 느껴 타국살이'

1923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 20세 때 중국 후난성(湖南省)으로 끌려가 4년 동안 위안부 생활을 했다. 할머니는 1945년 8월 일본군이 패전한 후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일본 조계로 도망쳤으나 수치심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중국인 남성과 결혼해 후베이성(湖北省) 샤오간(孝感)에 정착했다.

할머니를 만난 관계자가 "고향에 가고 싶지 않으세요?"라고 묻자 "고향에 가서 뭐해 가봐야 아무도 없는데"라고 입 꾹 닫던 할머니. 60년 넘게 샤오간에 살면서 낯선 땅이 고향이 되고 낯선 말이 모국어가 돼 버렸다. 한국어는 잊어버리고 우한(武漢) 사투리 밖에 못 하던 할머니는 일행 한 명이 '목포의 눈물'을 부르자 나즈막히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박○○ 할머니.

박○○ 할머니.

#24. 박○○ '빈집이 독방 같아서인지 밤새 TV틀어놔'

낯가림이 심한 박○○(87) 할머니는 도통 속 얘기를 하지 않아 할머니를 찾아보는 시민단체 관계자들도 정확한 동원시기나 장소를 모른다. 50대 아들과 60대 딸이 유일한 혈육이다. 30대 후반에 남편과 사별하고 품삯으로 남매를 키웠다.

포항에 홀로 살고 있는 할머니는 '외롭다'는 말을 부쩍 자주 한다고. "할머니께서 '가까운데 빈집 많은데 이사오면 안 되겠느냐'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손정애 자원봉사자의 말이다. 텃밭에 옥수수ㆍ고추ㆍ깨ㆍ콩 등을 키우는 할머니는 손님이 온다고 하면 옥수수를 잔뜩 삶고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할머니는 초저녁 잠이 많다. 밤 9시면 잠들었다가 새벽 1~2시면 깨는 생활의 반복이다. 빈집이 위안소 독방을 연상시키는 것이 싫어서일까. 할머니는 정규 방송이 끝날때까지 TV를 틀어둔다.

송신도 할머니.

송신도 할머니.

#25. 송신도 '일본서 유일하게 피해자 사실 밝히고 소송'

송신도 할머니는 1922년 충남 계룡산 부근에서 태어났다. 16세에 "돈을 많이 버는 일이 있다"는 어느 여자의 말에 속아 중국 우창의 위안소로 끌려갔다. 해방 후 한 일본군의 손에 끌려 함께 일본으로 갔으나 곧 버림받고 만다. 그 후 재일동포 남성과 함께 살기도 했지만, 지금은 일본에서 혼자 거주 중이다.

송 할머니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밝히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법정 투쟁을 벌였다. 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2009)'는 송 할머니의 10년에 걸친 소송 과정을 담았다. 할머니는 2011년 일본 대지진으로 연락이 끊기기도 했다. 송 할머니는 '재일 조선인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의 도움으로 일본 도쿄에서 지내고 있다.

안○○ 할머니.

안○○ 할머니.

#26. 안○○ '남자라면 징그럽다…평생 독신으로 지내'

황해도 개성에서 태어난 안○○ 할머니는 14살 때 저울 위에 올라갔다가 또래보다 덩치가 크고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트럭에 실려 중국 위안소로 끌려갔다. 1946년 천신만고 끝에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남자라면 징그럽다'며 결혼은 하지 않았다. 대구에서 강원도로 거처를 옮겨 다니던 할머니는 지난해 말까지 다세대 반지하방에서 생활을 했지만 지금은 조카 내외와 함께 살고 있다.

할머니의 방에는 고혈압, 당뇨, 관절염 약들이 수두룩하다. 활동가들이 찾아가면 반갑게 맞아주고 오히려 젊은 사람의 건강을 걱정해주는 따뜻한 성격이다. 할머니는 지난 5월 수원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위해 성금을 내고 제막식에 참석하는 등 대외활동도 열심이다.

양○○ 할머니.

양○○ 할머니.

#27. 양○○ '피해자 사실 알려질까봐 노인정도 안 가'

양○○ 할머니는 192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8살에 "좋은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는 말에 속아 배를 타고 따라간 곳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 위치한 위안소였다. 3년 후 해방이 되고 나서야 고향에 돌아왔다.

2007년 막내딸까지 결혼한 이후 혼자 살고 있다. 할머니는 지금도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걱정돼 노인정에 가지 않는다. "노인정에 가면 서로 남 흉보고 말들이 많아서 싫어. 그냥 이렇게 종일 집에 있는 게 편하지."

깨끗이 정돈된 할머니의 집안 풍경처럼 깔끔하고 곧은 성격이지만, 낯가림이 심해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곳도 피한다. 할머니는 관절염이 심해 거동이 어렵고 약을 복용하고 있다.

우○○ 할머니.

우○○ 할머니.

#28. 우○○ '일본군한테 맞은 후유증, 지금도 허리 아파'

공개를 꺼리는 우○○(86) 할머니의 정확한 동원 시기ㆍ장소는 알 수 없다. 함경도가 고향인 할머니는 위안부로 끌려가면서 가족과 생이별을 했다. 할머니는 최근 북에 있는 남동생들의 생사를 확인했다고 정대협에 전해왔다.

2007년 남편과 사별하고 서울 용산에 있는 단독주택에 혼자 살고 있는 할머니는 올초 얼굴에 마비가 와 며칠 고생했다. 일본군한테 구타 당한 후유증 탓에 허리 통증에 시달린다. 치매 증상은 점점 더 심해져 시장에 갔다가 집을 못 찾아 한참 헤맨 적도 있다. 미국에 있는 아들을 그리워하고 북에 있는 형제를 가슴에 품고 사는 할머니는 한탄한다. "세상을 잘 못 만나 그렇지, 요사이 태어났으면 능력 있는 여자로 살았을 텐데…"

유희남 할머니.

유희남 할머니.

#29. 유희남 '여전히 우리를 얕보는 일본, 안 변한다'

1929년 충북 아산에서 태어난 유희남(85) 할머니. '나눔의 집'에 살고 있는 할머니들 중 유독 언론에 얼굴이 노출되길 꺼려 카메라를 피한다. 지난 6월 배춘희 할머니의 영결식 때도 시종일관 흰 마스크와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폐암 투병 중인 할머니는 정기적으로 병원 검진을 받고 있지만, 연로한 탓에 적극적인 항암치료나 수술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래도 할머니는 언변에 능하고, 총기가 살아 있다. 쉼터 내에서 '인텔리'로 불릴 정도다. 지난 8일 기자와 만난 할머니는 "(식민지 시대) 힘이 없어 당한 건데 누굴 나무라겠나. 그때 백성들은 가진 것을 모두 빼앗겼다"면서도 "일본이 여전히 우리를 얕보기 때문에 요즘도 태도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윤○○ 할머니.

윤○○ 할머니.

#30. 윤○○ '독립군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13살에 끌려가'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윤○○(83) 할머니는 독립군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13세 때 일본군 위안부로 차출됐다. 하루 수십명씩 밀려드는 일본군인들을 상대하면서 두려움과 고통에 소리치면 일본 군인은 할머니를 더 난폭하게 대했다고 한다. 일본군한테 그렇게 고초를 겪고도 할머니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일본이 너무 불쌍해 도와줘야지"라고 안타까워했다.

현재 할머니는 서울 서초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다. 손주자랑, 자식자랑이 할머니의 낙이다. 큰 딸이 홀로 사는 할머니를 매일 들여다본다. 할머니 딸은 '어머니의 건강이 안 좋아져서 빨리 이 문제가 어떻게라도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할머니 역시 위안부 문제 해결을 갈구한다.

▶'위안부 보고서 55' 온라인 스토리뷰 보러가기: http://story.asiae.co.kr/comfortwomen/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주상돈 기자 don@asiae.co.kr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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