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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문 앞두고 북촌 등 천주교 순례지 팸투어

최종수정 2014.08.11 07:08 기사입력 2014.08.11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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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가회동 성당’,‘석정보름우물’ 등 한국천주교사의 중요한 거점 탐방 진행

[아시아경제 박종일 기자] 종로구(구청장 김영종)는 11일 오후 2시 '천주교 순례지 팸투어'를 진행한다.

이번 팸투어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행사를 앞두고 종로구 천주교 순례지를 알리고 그 의미를 되짚어보기 위해 마련됐다.
팸투어 참가자들은 종로구와 국외 자매도시 글로벌가정문화체험 참석자 21명으로 중국과 몽골 학생들이 참여한다.

투어 코스는 ▲북촌1경 ▲석정보름우물터 ▲중앙고교 ▲가회동 11번지 ▲북촌4·5·6·7경 ▲가회동 성당으로 북촌골목길 해설사와 가회동 성당 총무의 해설과 함께 이루어진다.

특히 이번 팸투어가 진행되는 북촌 일대는 조선의 첫 미사가 있었던 역사적인 곳이자 모진 천주교 박해 속에서 신앙의 승리를 이룬 흔적이 남아 있는 지역이라서 더욱 의미가 있다.

조선에 들어온 최초의 사제인 중국인 주문모 신부는 1795년4월5일 부활대축일에 서울 ‘북촌 심처’에 있던 최인길 집에서 조선 땅 첫 미사를 드렸다.
이후 체포령이 내려지자 같은 동네 강완숙의 집에서 무려 6년을 숨어지내며 전교활동을 했고 주 신부를 포함해 북촌일대에서 활동한 초기 조선 천주교지도자들은 대부분 신유박해를 전후해 순교했다.
석정보름 우물

석정보름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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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교황 방한과 함께 시복되는 ‘하느님의 종’ 124명 중 20여 명이 북촌을 중심으로 활동했다고 알려진다.

혹독한 박해 속에서도 주 신부를 찾아 세례를 받은 사람이 수 천 명에 이르렀다고 전해지며 북촌에 숨어든 신자들은 원시적인 수도원 형태의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하기도 했다.

왕명에 따라 모진 박해가 계속됐지만 가장 가혹한 박해를 가한 인물인 흥선대원군의 손자이자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이강)과 의친왕비(김숙) 등 가족들은 결국 가회동 성당에 주임사제에게 세례를 받아 천주교 신자가 되면서 신앙의 승리를 보여주었다.

이처럼 한국 천주교사에서 중요한 북촌 지역을 관할하는 가회동 성당(북촌로 57)은 1949년 처음 세워진 낡은 건물을 허물고 지난해 말 새로운 모습의 성당을 준공했다.

역사와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한복입은 선비와 벽안의 외국인 선교사가 어깨동무한 형상’을 주제로 사랑, 대청마루를 가진 한옥과 성당이 들어선 양옥이 어우러진 구조로 신축했다.

성당 1층에는 한국 천주교회와 가회동 성당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역사전시실도 마련돼 있다.

가회동 성당 건너편 500m쯤 떨어진 곳에 남아있는 석정보름우물(계동길 110)은 천주교 박해의 흔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장소이다.

북촌에 있는 오래된 우물은 물맛이 좋아 궁궐에서도 사용했다고 한다.

돌로 만들어진 이 특이한 우물은 15일 동안은 맑고 15일 동안은 흐려지곤 했기 때문에 보름우물이라고 불렸다. 주문모 신부가 북촌에 숨어 살며 선교활동을 벌일 당시 이 우물에서 길어낸 물로 영세를 주고 마시기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87년 복원, 지난해 종로구가 덮개와 안내판을 재정비했다.

북촌 이외도 종로구 전역에 걸쳐 천주교와 관련한 흔적들을 만나볼 수 있다.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성당(창경궁로 296-12)은 1855년 설립된 한국 최초의 신학교인 배론의 성요셉 신학교를 모태로 발전한 곳으로 최초의 한국인 사제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제대에 모셔져 있다.

젊은 신학도들의 요람으로 평소에는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지만 방학 기간 동안은 교정 일부를 개방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와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종로 성당(동순라길 8)은 지난 2013년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으로부터 ‘포도청 순례지 성당’으로 승인받은 곳이기도 하다.

포도청 순교지는 103위 성인 중 22분, 현재 시복중인 ‘124위 하느님의 종’ 중 5위가 순교한 곳이지만 성지를 알리는 표지석이 없어 종로성당에서 성지순례 안내소와 순교자 현양관을 만들어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적인 사건과 의미를 일깨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좌포도청 터(돈화문로 26)와 우포도청 터(세종로 139)는 조선시대 치안과 방범을 관할하던 기관인 포도청이 있던 자리다. 1785년 김범우의 집에서 천주교인들을 적발한 이후 교인들을 색출해내는 일을 주요 임무로 했으며, 천주교 박해시기에 수많은 신자가 좌우포도청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좌포도청 터는 현재 단성사 앞 인도변에 최시형 순교터 표지석과 함께 표석으로 남아있다.

우포도청은 현재 광화문우체국 일대로 동아일보 사옥 앞 화단 내에 표석이 설치돼 있다. 포도청의 소관 사무에 대한 기록들을 엮은 책인 ‘좌포청 등록’과 ‘우포청 등록’에는 1830년대부터 1880년대까지 천주교에 연루돼 체포된 500여 명의 심문기록이 남아 있다.

형조 터(세종로 81-3)는 재판과 법 집행, 노비를 담당하던 관청인 형조가 있던 자리다. 1785년 발생한 ‘을사추조적발사건’으로 명례방에 있던 김범우 토마스의 집에서 집회를 갖던 중 형조의 금리들에게 발각돼 형조로 압송된 사건을 시작으로 수많은 신앙 선조들이 압송되어 문초를 받았던 곳이다.

한국천주교회 창립터(이벽의 집 터, 청계천로 105)는 북경에서 한국 최초로 영세를 받고 돌아온 이승훈 베드로가 1784년 겨울 신도들에게 첫 세례식을 거행한 곳이다.
가회동 성당

가회동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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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학자들을 중심으로 한국 최초의 신앙공동체가 평신도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졌으며 ‘한국 천주교회 창립 터, 정조 8년 겨울, 이 수표교 근처에 있던 이벽의 집에서 한국 천주교회가 설립됐다’는 내용을 담은 표지석을 세웠다.

정확한 고증에 따라 표지석의 위치는 향후 건너편인 수표교 남쪽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의금부 터(종로47)는 형조·한성부와 함께 3법사(三法司)로 조선시대 왕명에 의해 죄인을 추국하던 사법기관인 의금부가 있던 자리다.

천주교 박해 시기에 천주교 신자들, 주교와 신부, 평신도 지도자들이 임금의 특별한 명령으로 의금부로 압송되어 신문을 받았다.

이들 중에는 주문모 신부와 정약종 등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승훈 베드로 등 많은 천주교 신자가 고초를 겪었고 대부분 이 곳에서 사형선고 받았다.

전옥서 터(청계천로 41)는 조선시대 서울의 미결수를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수감하는 일을 담당하던 관청인 전옥서가 있던 자리로 1801년 신유박해 때부터 많은 신자들이 수감됐던 곳이다.

기해박해 때 김대건 신부의 부친 김제준 이냐시오 성인이 의금부에서 형조로 이송돼 처형될 때까지 수감됐으며, 이호영 베드로 성인은 4개월 동안 전옥서에 갇혀 있다가 옥사했다.

병인박해 때는 전장운 요한 성인과 최형 베드로 성인 등이 의금부에서 형조로 이송돼 판결을 받고 서소문밖에서 참수됐다.

경기감영 터(통일로 136)는 경기관찰사가 행정사무를 보던 관아인 경기감영이 있던 자리다.

예비신자 조용삼이 여주에서 체포돼 형벌을 받다가 1801년 숨을 거두었다. 조용삼은 1801년3월 옥중에서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았으며, 이 지역에서 탄생한 신유박해의 첫 번째 순교자로 알려져 있다.

종로구는 이번 교황 방한 행사를 계기로 천주교 순례지를 잘 보전하고 이야기로 엮어 역사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또 향후 종로구의 종교문화유적길과 연계·보완하고 지역주민 등 희망자를 모집해 팸투어도 활성화할 계획이다.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의미있는 지역인 북촌을 중심으로 종로구 순례지를 잘 연계해 천주교 신자와 종로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명소로 조성, 한국 천주교의 초기 역사와 순교자들의 신앙생활을 널리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종일 기자 dre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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