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넘어오면서 헤어가 다시 등장했지만, 헤어샵은 곧 헤어커커, 헤어디자인 따위의 전문적인 냄새가 풍기는 표현으로 진화를 거듭한다. 이 헤어뭐시기는 남자들의 머리까지 수용하는 흡인력을 지녀, 이젠 이발소는 퇴폐중년들이나 아이와 노인들이 가는 곳이거나 목욕탕에나 있는 것이고, 헤어샵은 그 나머지 다양한 머리를 매만지는 곳으로 바뀌었다. 이발이란 말은 커트라는 말로 정리되었고, 머리를 마는 컬링이나 색깔을 넣는 컬러링이 더욱 중요한 헤어디자인 영역을 이뤘다. 이발소에서도 염색을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노화한 백발을 가리는 '치료적 도포'인 경우가 많다.
여자가 이발을 하지 않는 까닭은, 이발이 지닌 방어적 개념 때문인지도 모른다. 길어진 머리카락을 처리해야 하는 게 아니라, 머리카락을 리디자인함으로써 자신의 미적 가치를 드높이는 적극적 행위이기에 수십만원을 아끼지 않고 투자하는 것이리라. 이발은 자기를 건사하고 사는 일이 삶의 목표였던 시절에 신체에 대해 행해왔던 근대적 태도의 자취라고도 할 수 있다. 이젠 머리카락을 처리하지도 정리하지도 않는다. 그것에 의미와 가치와 느낌을 부여하고, 존재의 다채로운 코스프레로 쓴다. 이발이란 말 한 마디에도 핵심 문화사가 들어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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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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