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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유통단계 줄이자<上>] 직송배추 습격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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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서 식탁까지 직거래하는 유통혁명, 생산자·소비자 모두 웃다

[농산물 유통단계 줄이자<上>] 직송배추 습격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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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 들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핵심 농정과제 중 하나가 농산물 유통 개선이다. 정부는 지난해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종합대책'을 세워 농산물의 높은 유통비용과 가격 불안정성을 해소하는데 전력을 쏟고 있다. 정부가 추진중인 주요 정책은 무엇이고 성공 사례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2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주>

#. 전남 해남에서 배추 농사를 짓는 정모씨. 그는 지난해 말 재배한 배추 1만5000여포기를 산지 유통상인인 박모씨에게 포기당 300원씩을 받고 팔았다. 배추를 넘겨받은 박씨는 곧바로 인부들을 고용해 배추를 뽑고 트럭에 싣는 작업을 거쳐 인근 대형 도매시장에 넘겼다. 박씨가 도매시장에 공급한 금액은 포기당 800원. 이 배추는 다시 도매법인과 중도매인ㆍ소매상 등의 단계를 거치면서 포기당 600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결국 산지로부터 6단계의 유통과정을 거친 이 배추는 서울에 사는 소비자 김모씨에게 1400원에 팔렸다.
산지에서 300원하던 배추가 결국 산지가격 대비 3배 이상의 유통비용이 더 붙고서야 소비자에게 전해진 셈이다. 이처럼 복잡한 농산물 유통구조 탓에 생산자가 아무리 싼 값에 넘긴다해도 소비자는 비싼 값을 내고 사먹을 수 밖에 없다.

[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배추와 같은 신선농산물의 경우 산지 수집과 유통 과정이 필수적이다. 생산 장소에서 바로 유통시킬 수 있는 공산품과는 차원이 다르다. 산지 생산, 수집, 유통이라는 기본 단계를 거쳐야만 상품이 소비자의 손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보통 산지에서 소비자까지 5~7단계를 거쳐야 한다. 유통 단계가 많아질수록 소비자 지불가격과 농가 수취가격 사이에 더 큰 격차가 나게 된다. 소비자는 높은 가격을 지불하지만 농가가 받는 가격은 생산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과다한 유통마진, 즉 복잡한 유통 단계가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손해를 일으키는 주범인 셈이다.

◆ 농산물 유통단계 3~4단계로 = 정부는 농산물 유통의 단계를 통폐합하고 단순화해 최대 7단계에 이르는 현행 농산물 유통 단계를 향후 3~4단계까지 줄여나가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농산물 유통의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현재 산지 유통인 중심의 채소류 유통방식을 점진적으로 농협 등 생산자 단체 중심으로 바꿔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를 바탕으로 '농업인은 제값을 받고 농산물을 팔게 하고, 소비자에게는 값싼 농산물을 살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시킨다는 것이 농식품부의 구상이다.
정부가 추진중인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대책의 핵심은 도매시장 수술이다. 지난해 우리 농산물의 전체 유통물량 중 절반인 53%가 도매시장에서 거래됐는데 이 물량 대부분이 경매를 통해 시장에 풀리면서 가격 변동성을 키웠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정부는 예측 가능성이 높은 정가ㆍ수의 매매를 현행 9%대에서 2016년까지 20%로 늘릴 방침이다. 도매시장의 가격 결정방식을 경매중심에서 정가ㆍ수의 매매 거래로 다양화하겠다는 의도다. 정가매매는 사고 파는 사람이 가격을 미리 정하고 거래를 하는 형태, 수의매매는 사고 팔 사람을 미리 정한 뒤 거래하는 방식이다. 이천일 농식품부 유통정책관은 "이웃 일본을 보면 정가ㆍ수의매매가 주거래 방식으로 정착돼 가격 변동성이 작다"고 설명했다. 반면 우리 도매시장에서 정가 매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8.9%에 그치고 있다.

또한 정부는 그간 중개 기능만을 담당해온 도매법인이 정가ㆍ수의 매매를 하는 것을 전제로 농산물을 직접 구매하고 저장ㆍ가공ㆍ물류까지 사업범위를 확대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두 단계 이상의 산지 유통인과 도매시장의 경매-중도매인 등을 거쳐 소비자에게 오는 7단계의 유통구조를 최저 4단계로 줄일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는 정가ㆍ수의매매를 활성화하기 위해 정가ㆍ수의매매에 참여한 도매시장 법인이나 중도매인에게 정책자금을 우대 지원하거나 대금정산 법인을 설립할 계획이다. 도매시장거래 투명성과 대금결제 안정을 위해 농안법을 개정, 대금정산 조직을 세워 현행 출하자와 유통인간 개별 대금정산 방식을 제3자를 통한 방식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 온라인 등 직거래 활성화 = 정부는 도매시장과는 별도로 농협의 도매물류센터를 중심으로 유통계열화 체계를 구축해 유통단계를 축소해 나갈 계획이다. 도매시장의 비중을 현재의 53%에서 2016년 40%로 낮추는 한편 도매물류센터 등 생산자단체 계열화를 통해 기존 12%에 불과하던 유통비중을 20%까지 올린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15년까지 경기도 안성과 경남 밀양, 호남 장성, 강원ㆍ제주 등 전국 5곳에 권역별 도매물류센터를 세운다. 권역별 도매물류센터는 지난해 하반기 문을 연 안성물류센터(수도권ㆍ충청권, 5만810㎡ 규모)를 시작으로 밀양센터(1만2222㎡ㆍ2014년 준공), 장성센터(6476㎡ㆍ2015년 준공), 강원센터(2810㎡ㆍ2015년 준공), 제주센터(2810㎡ㆍ2015년 준공)를 차례로 선보인다. 정부는 물류센터와 함께 생산자단체 중심의 유통계열화를 통해 산지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 생산자단체의 시장 점유율을 2012년 28%에서 2016년 36%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또 도매물류센터로 농산물을 전속출하할 산지 공동출하조직도 2016년 2150개까지 육성하기로 했다.

계약재배 확대를 통해 농산물 가격 안정도 유도한다. 계약재배는 농협이 농가와 사전에 구매계약을 맺은 뒤 재배하는 형태로 물량이 늘수록 정부의 농산물 수급 조절이 수월해진다. 산지 유통인이 영세농가와 포전거래(일명 밭떼기)를 함으로써 가격 급등 시 생산물 출하를 미뤄 시장을 교란시킬 수 있는 여지도 줄이게 된다. 정부는 배추 등 수급 불안 품목 중심으로 계약재배 물량을 2012년 12%에서 2017년 30%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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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배추 파동, 지난해 양파 파동처럼 일부 농산물의 가격이 급등락하면 정부가 즉각적으로 수급 안정 대책을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도 마련했다. 배추ㆍ양파 등 주요 품목의 5개년 평균 가격 분포를 분석해 '가격 안정대'를 설정하고, 농산물 가격이 이 범위를 벗어나면 주의-경계-심각 단계의 경보를 발령해 단계별로 산지 동향 점검, 비축 물량 공급, 관세 인하 등 수급안정대책을 시행키로 했다.

아울러 정부는 온라인 거래나 직거래 장터, 직매장을 통한 직거래 비중도 기존 4%에서 10%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사이버거래소가 대표적이다. aT는 대량 구매처와 사전예약제 운영을 통해 농산물 온라인 거래를 늘려 나가고 있다. 2010년 1700억원에 불과했던 aT 사이버거래소의 '농수산물 온라인 거래' 실적은 불과 3년새 7배 이상 급증하며 지난해 1조2000억원을 돌파했다. 이천일 유통정책관은 "그동안 유통비용과 가격변동성을 해결하지 못해 유통구조 개선에 성공하지 못한게 사실"이라며 "도매시장을 효율화하고 다양한 유통경로를 육성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유통 생태계를 조성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로컬푸드 매장' 성공시대
지역농민이 생산한 농산물 직접구매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로컬푸드 직매장, 직거래 장터, 온라인 직거래 등 생산농가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 주는 다양한 형태의 직거래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 중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직거래 사업이 '로컬푸드 직매장'이다. 로컬푸드 직매장은 지역 내 농가가 당일 수확한 농산물을 중간 유통단계를 거치지 않고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곳을 말한다.

소매라 할지라도 통상 '농민→산지 수집상→도매시장→공급업체→소비자'의 유통 경로를 거친다. 그러나 로컬푸드 직매장은 '농민→농협(판매처)→소비자'라는 단순한 직거래 구조를 갖췄다. 복잡한 유통과정을 간소화하고 줄어든 유통비용을 농가와 소비자가 나눌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신선한 농산물을 지속적으로 공급한다는 점도 장점이다.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한 농가는 좀 더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생산에 참여하게 되고,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에 안전하고 신선한 먹거리를 구입할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미국의 농민장터(파머스마켓)는 2012년 기준 7500개소가 넘는다. 뉴욕같은 대도시에도 지역 농민들이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갖고 와 파는 농민장터가 인기다. 해마다 1000여곳 이상 증가하고 있다. 일본의 지역농산물 직판장은 1만7000여개소로 전국 곳곳에 분포하고 있다.

▲컬푸드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전북 용진농협의 로컬푸드 직매장은 300여 가지의 신선 농산물을 인근 시세보다 30% 이상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해 고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사진은 용진농협 전경(왼쪽)과 로컬푸드 직매장의 내부 모습.

▲컬푸드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전북 용진농협의 로컬푸드 직매장은 300여 가지의 신선 농산물을 인근 시세보다 30% 이상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해 고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사진은 용진농협 전경(왼쪽)과 로컬푸드 직매장의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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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2012년 4월 전북 완주의 용진농협에서 가장 먼저 선보였다. 용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에서는 300여가지의 농산물을 인근의 대형마트보다 30% 이상 싸게 판다. 특히 당일 생산한 농산물만 취급하고, 자체적으로 잔류 농약 검사를 실시해 소비자들로부터 호응이 높다. 하루에 2000여명이 찾아 3000만~3300만원 어치의 농산물을 사갈 정도다. 지난해 총 매출액은 100억원에 육박했다. 웬만한 중소기업에 버금간다. 방문객 중 70% 이상은 전주에서 오는 도시 사람들이다. 지역경제에도 기여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농산물 판매로 거둔 수입을 본사로 보내지만 로컬푸드의 이윤은 고스란히 지역 농가에 돌아간다. 정지기 용진농협 전무는 "벤치마킹을 위해 매일 전국 각지에서 2~3개 팀이 용진농협을 찾고 있다"며 "지금까지 누적 인원이 3만명을 넘는 등 로컬푸드 매장의 벤치마킹 모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상반기에 문을 연 김포농협의 로컬푸드 직매장도 인기다. 용진농협에 비하면 규모는 작지만 호응도는 용진농협 못지 않다. 63평 남짓한 김포농협 로컬푸드직매장은 하루 평균 500명의 고객이 방문해 820만원 상당의 농산물을 구입한다. 이는 김포농협 본점에서 운영하는 하나로마트에서 하루 판매하는 농산물 280만원보다 3배 가까이 많은 액수다. 가격이 대형마트에 비해 20~40% 저렴할 뿐 아니라 모든 농산물에는 재배지와 생산자 등의 정보가 붙어 있어 소비자들의 신뢰가 높다. 실제 김포농협 직판장의 경우 지난 17일 기준 상추 200g을 1100원, 느타리버섯 200g을 1500원에 각각 판매했다. 같은 날 인근 대형마트에선 상추는 2000원, 느타리버섯은 2300원에 팔리고 있었다. 로컬푸드 직매장의 가격이 35~45% 저렴한 셈이다.

이처럼 로컬푸드 직매장이 성공을 거두면서 정부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농식품부는 로컬푸드 등 새로운 유통방식의 직거래를 확산하기 위해 지난해 210억원이 넘는 예산을 편성했고, 올해 또한 지난해 보다 많은 230억원 가량의 예산을 지원할 계획이다.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지금까지 전국에 20곳의 로컬푸드 직매장이 문을 열었고, 2016년까지 모두 100곳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이정삼 농식품부 서기관은 "직매장 설치 외에도 운영 매뉴얼 보급, 농가조직화 교육, 안심꾸러미 상품 개발, 소비자 조직화, 운영자금과 예산 등 지원책을 점차 널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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