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층집 영감 바로 앞 한 걸음도 채 되지 않는 지점에 이른 최기룡은 그제야 발걸음을 멈추고는 영감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곧 그의 입가가 비틀어지며 냉소 같은 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사내는 재빨리 영감의 손에서 엽총을 나꿔채었다. 아니 나꿔채려는 순간이었다. 이장 운학이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흥, 언제부텀 니가 쟤들이랑 한 통속이었나?” 절룩거리는 다리를 끌고 이층집 영감과 사내를 향해 걸어가며 운학이 소리쳤다.
“설마하니 네 놈이 저기 쓰레기 같은 송사장 똥구녕 핥아주는 사이인 줄은 꿈에도 몰랐지. 암, 귀신도 몰랐을거야! 수도 고치는 놈이 수도나 고치면 될 일이지 차차차 파라다이스 상무....? 웃기지 마. 웃기지 말라구!”
“말조심....? 그래, 흥, 말조심할게. 넌 개자슥이다. 어쩔래? 넌 지금까지 친구인 나까지 속였어! 어느 편도 들지 않는 것처럼 하면서 속으론 은밀하게, 그래 은밀하게 저 송사장이란 눔들하고 거래를 했어. 동네를 저 눔들한테 팔아먹은 거야. 아니야?”
“너, 정말 말조심 안 할거야?” 순간 하림만 느꼈던 것일까, 힐끗 돌아보는 사내의 눈에 번쩍 살기 같은 게 띄었다. 하림은 그날 밤의 광경이 불현듯이 떠올랐다. 태연히 개를 쏘아죽이고 끌고 가던 그라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다.
하지만 술에 취한 운학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기 말로는 한쪽 다리를 조국에 바쳤다고 하는 상이용사였다. 그깐 협박에 넘어갈 그가 아니었다.
“안 하면....? 안 하면 어쩔테냐? 개발, 개발 해쌓지만 그까짓 유원지 들어오면 동네 망해. 동네는 망한다구! 늬 놈들이야 한탕 치고 달아나면 그 뿐이지만 동네는 망한다구. 골프장 들어온다고 떠들썩하던 동네들 지금 다 어디로 갔나?” 그래 놓고 경로잔치에 모인 영감네를 돌아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나 이장입니다. 이장 운학이라구요! 제발 찬물 마시고 정신 좀 차리세요! 아, 수백년 조상들이 지켜온 동네가 하루아침에 놀이터로 변해서야 말이나 되겠습니까? 땅값 오른다고 지랄 떨지만 쟤들 알고 보면 사기꾼들이예요! 알거지 사기꾼들이라니까요! 속으면 안 돼요!”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김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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