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슨을 뛰어넘는 천재라고 평가받는 테슬라는 에디슨의 직류 발전 시스템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교류 시스템을 제안했으나, 에디슨은 이를 무시했다. 테슬라는 1893년의 시카고 만국박람회와 나이아가라 발전소 발전 설비 수주를 통해서 직류와 교류 전쟁에서 에디슨을 누르고 승자가 됐다. 두 천재가 치열하게 경쟁한 덕분에 현대의 전기 시스템이 태어난 것이다. 경쟁 과정에서 에디슨의 지나치게 상업적인 마인드가 비판받기도 했지만, 그 경쟁의 경제적ㆍ사회적 파급 효과는 인류사에 있어 실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에디슨은 JP모건, 테슬라는 조지 웨스팅하우스와 같은 당대의 유력한 엔젤투자가들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치열한 경쟁이 가능했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으로 과학기술자 성공 모델 부족, 이공계 박대 풍토, 학부모의 이기심, 학교 측의 책임 회피, 정부의 정책 부족을 손꼽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주의 깊게 돌아보면 이공계 출신의 최고경영자 증가 추세 등 이공계 성공 모델은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공계 성공 모델 부족이나 이공계 박대 풍토보다는, 국가의 미래가 걸린 과학기술에 자신의 불확실한 일생을 걸었을 때, 이에 상응하는 풍부한 보상책에 대한 정부의 밑그림이 설득력이 약한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조선시대 최고의 발명가인 장영실을 떠올려 보자. 에디슨보다 400년 앞서 활동했던 그는 천민으로 태어났지만 재주가 많아 지방 관찰사의 눈에 띄어 인재 추천 제도를 통해 궁궐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무신 이천을 통해 세종대왕에게 발탁돼 중국에 파견되는 등 최고의 장인으로서 인정받고, 나중에는 정3품까지 오르게 된다. 그가 발명한 자격루, 측우기 등은 백성들의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만든 당대 최고의 발명품이었다고 평가받는다.
명 현 카이스트 건설 및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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