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뿐인복지법 개정하라 "..끝내 싸우러 나선 예술인들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두해전 요절한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은 산업재해로 죽은 건 아니다. 지독한 '굶주림'이 원인이다. 그러나 '최고은법'으로 불리는 예술인 복지법은 4대 보험 중 정작 유명무실한 산재보험과 복지재단 설립이라는 허울만 남긴 채 지난달 시행에 들어갔다.
따라서 복지법이 예술인들의 인권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이에 예술인들이 복지법 개정을 위한 연대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나섰다. 4일 나도원 소셜유니온 설립 공동 준비위원장(음악 평론가)은 "내년초 산별 노조 결성을 시작으로 복지법 개정을 위한 예술인 연대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며 "예술인이 배제된 복지법은 오히려 사회적 공공재 생산활동을 담당하는 예술인들의 지위 및 인권 향상에 장애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ㆍ 정치권은 '나중에 차차...해나가자'며 얼버무리지만 미룰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소셜 유니온은 지난 10월 산별노조 설립 준비 모임 결성에 이어 내년 초 산별노조 설립에 분주한 양상이다. 소셜 유니온은 문화예술 생산자 조직으로는 최초로 기존 활동가 중심의 '문화연대'와는 차별적인 단체다. 소셜 유니온에는 문학, 미술, 음악, 영화, 만화 등 각 장르가 총 망라돼 있으며 회원이 600여명에 이른다. 예술인 복지법 시행 이후 회원 가입이 늘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한국고용 정보원 및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예술인 수는 54만명 수준이다. 복지법 상 산재보험 대상은 4만여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마저도 개인별로 가입,보험료를 내도록 돼 있어 실효성이 희박하다. 공연, 영화 스태프 등 일부 가입이 예상되나 음악, 미술, 문학 등 개인사업자화돼 있는 예술인의 경우 의료보험 가입마저 기피하는 상황에서 산재보험에 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
복지재단을 통한 예술인 지원도 유명무실하다. 내년 예술인 복지재단 예산으로 책정된 금액은 당초 355억원에서 76억원으로 축소됐다. 이 금액은 국회 예산안 심의에서 통과될 지도 미지수다. 여기에 복지 재단 운영비 등을 포함하고 있어 예술인에게 돌아갈 수 있는 액수는 더욱 줄어든다. 따라서 예술인 1인당 지원금액은 1만원에도 못 미친다.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복지재단에 예술인 횔동증명을 통해 예술인임을 확인받는 절차를 거쳐야한다. 그러나 조건이 모호한 것은 물론 증명을 갖춘다해도 지원받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런 현실에서 예술인연대의 목표는 창작준비 및 취업지원사업 등의 재원 마련이다. 소셜 유니온이 지난해말 음악인 22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생계유지를 위해 70% 이상 부업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강습 및 레슨 29%, 아르바이트 23%, 자영업 4%, 기타 9% 등이 부업 일선에 매달리고 있다. 온전히 음악활동만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경우 23% 수준(음악기업에 정식계약을 맺은 고용 형태 12% 포함)이다. 전업 음악인이라해도 월 수입 100만원 미만인 경우가 60%를 상회한다. 미술이나 문학, 무용 등 다른 장르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게다가 현장에서 개인 창작자가 계약서대로 돈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한 작곡가는 "음악인은 영화 음악감독이나 음악기업의 노예"라고 자조하며 "그나마 음악인을 등쳐먹는 행태는 관변도 절대 덜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올해 중반 국제행사의 음악작업에 참여했던 그는 "행사가 마무리된 뒤 석달 지나서야 밥값 수준의 돈이 나왔을 뿐"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음악 총괄 감독은 국제 행사에 참여해 경력에 보탬이 됐으니 돈 이상의 소득이 있지 않냐고 생색을 내더라"며 "그저 국익을 위한 재능기부라 생각하고 참았다"고 말했다. 예술인들이 처한 환경을 단적으로 들려주는 사례다.
10여년 이상 한 장르에 종사해온 예술인도 예외는 아니다. 장상우씨(가명, 44)는 15년동안 총 20여편의 영화 작업에 참여할만큼 인정받는 촬영감독이다. 갖은 고생 끝에 감독이라는 위치에 올랐지만 그도 생활고에 무너지지 않을 수 없었다. 장씨는 삼년전 충북 제천으로 귀농, 개별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만 일회적으로 영화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장씨는 "관람객 300만명이 넘어서는 '대박'도 세차례나 터뜨릴만큼 성적이 괜찮은 편이었다. 그런데도 몇차례는 돈을 받지 못 했다. 어떤 영화 촬영 때는 몇달씩 빚을 내 생활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예술인들은 (자본과 결합되지 않고는) 절대로 예술 창작 하나만으로 살 수 없다. 이젠 영화를 만든다는 자부심도 바닥났다"고 덧붙였다.
"저변의 문화 예술 콘텐츠 생산자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신음하고 있는 상황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신음소리를 전혀 못 듣고 있다. 다들 싸이의 '말춤', 'K-팝' 등 한류 열풍에 취해 있지만 그건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자본과 상업적 결합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사실상 토대가 허물어지고 있다. 굶주림속에서 예술혼을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술 창작도 엄연히 노동이다. 예술품은 사회공공재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비용을 지불해야한다. "
예술인들의 장탄식은 비단 '밥'과 관련한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예술 창작물을 거의 공짜로 인식하는 사회적 풍토도 문제다. 민정연 꽃다지 대표는 "예술 창작물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무척 꺼리는 풍조는 여전하다. 사회 공공재로서의 문화 상품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 문화산업으로 인식해주는 분위기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결국 사회적 생산물을 만들기 위해 창작적 고통 외에 사회와 자본, 제도, 관행 등과 동시에 싸워야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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