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1/3 가격 공급 '사업보국' 실현...밀가루·조미료도 독자적 기술 확보

제일제당 인천 1공장을 시찰중인 고 이병철 선대회장(왼쪽 두번째)

제일제당 인천 1공장을 시찰중인 고 이병철 선대회장(왼쪽 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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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광호 기자] CJ CJ close 증권정보 001040 KOSPI 현재가 218,000 전일대비 3,000 등락률 +1.40% 거래량 79,892 전일가 215,000 2026.04.24 15:30 기준 관련기사 CJ온스타일, 상반기 최대 쇼핑행사 '컴온스타일' 개최…"최대 50% 할인" 오늘 산 옷 오늘 입는다…CJ온스타일, '오늘도착' 물동량 252%↑ "K뷰티 생태계 구축"…이재현 CJ 회장, 올리브영 명동 현장 점검 의 과거 50년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2개의 키워드는 '식품사업' 그리고 고(故) '이병철 선대회장'이다. CJ의 모태인 제일제당은 삼성의 모태이기도 하다.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처음 세운 제조업체가 바로 제일제당이기 때문이다. 1953년 11월5일은 국내 식품사에 한 획을 그은 날이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산업환경 속에서 전량 수입에 의존했던 설탕이 최초로 생산된 바로 그날이다. 지금은 설탕을 흔하디 흔한 양념이나 기호품 정도로 인식하지만 당시 설탕은 국민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인 동시에 100% 수입에 의존하던 탓에 서민들은 접하기 힘든 사치품이기도 했다.


◆국내 최초 설탕 생산해 사업보국 실현=1953년 당시 설탕 수입량은 연간 2만3900톤에 달했다. 당시 제일제당은 부산에 공장을 준공하고 국내 첫 설탕을 생산해 100% 수입에 의존하던 설탕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당시 설탕 제조에 참여한 임직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10월28일 시운전에 들어갔는데 기대했던 설탕은 안나오고 콩깻묵 같은 것이 나왔다. 일본에서 제당기술을 배워온 직원 역시 원인을 몰라 고개만 갸우뚱할 뿐 속수무책이었다. 몇번씩 기계를 해체했다가 조립을 거듭하면서 갖은 궁리를 다해봐도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당시 기계 설치작업에 참여했던 직원들도 원인을 찾기 위해 밤잠을 설쳐야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만큼 설탕제조는 당시 기술로는 만만치 않았던 고난도 하이테크산업이었던 것이다. 첫 설탕이 생산된 11월5일은 제일제당 창립기념일이기도 하다. 그만큼 기념비적인 날임을 의미한다.

가격 역시 당시 근당 300환 이상이었던 수입산에 비해 근당 100환으로 가격을 낮춰 서민생활 안정에 큰 도움을 주게 된다. 이병철 회장의 창업이념 가운데 하나인 사업보국이 실현된 것이다.


제일제당 김포공장 '아이미' 전경.

제일제당 김포공장 '아이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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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ㆍ조미료에서도 두각..국내 대표식품기업 '우뚝'=국내 제당업계는 제일제당이 설탕생산을 시작한지 불과 2∼3년 사이에 6개 업체가 가세하는 바람에 시설과잉으로 출혈경쟁을 하기에 이른다. 제일제당은 새로운 돌파구로 제분사업에 진출하기로 결정한다. 제과사업 또한 신사업 후보로 꼽혔으나 군소 제과업자들과의 상생을 위해 사업 구상을 접었다.


결국 낙점된 신사업은 설탕사업과 시너지효과를 누릴 수 있는 제분업. 하지만 설탕사업 진출 때와 달리 밀가루 시장은 이미 16개 업체가 극심한 판매경쟁을 벌이는 '레드오션' 시장이었다. 극심한 사내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병철 회장은 제당사업의 난국을 타개할 유일한 돌파구라는 판단 아래 제분업 진출을 결정한다. 국내에 축적된 기술이나 인력이 전무했던 시절, 1958년 3월 제일제당은 자체기술과 국산기계만으로 제분공장을 완성하고 그 해 5월 첫 밀가루 제품을 출하하는데 성공한다. 설탕과 밀가루사업을 바탕으로 1963년말에는 조미료시장에 진출한다. 당시 조미료 시장은 1956년 70톤에서 1962년 960톤, 1963년에는 1200톤으로 급팽창을 거듭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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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조미료 시장은 미원을 비롯해 10여개가 난립해 있었고 제일제당은 미풍 브랜드를 갖고 있던 원형산업을 인수하며 시장을 노크한다. 제일제당의 미풍은 당시 업계 1위였던 대상의 미원과 그 유명한 '조미료 전쟁'을 벌이며 숙명의 라이벌관계를 형성한다. 조미료시장에서 대상에 밀리던 제일제당은 1975년 종합조미료 다시다를 내놓으며 업계 선두로 도약하는 기회를 맞이한다. 2년 뒤에는식품업계의 오랜 난제로 여겨지던 핵산을 자체 개발하는데 성공한다. 쇠고기맛, 생선맛, 멸치맛 등을 잇따라 내놓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다시다는 당시 살림살이가 넉넉치 않았던 서민들의 식생활 개선을 이끈 것은 분명하다. 이 역시 이병철 회장의 창업이념인 사업보국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제일제당의 백설 브랜드는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하고 사랑받는 브랜드 가운데서도 첫손에 꼽힌다. 백설을 국민 브랜드로 자리잡게 한 일등공신이 바로 '백설표 식용유'와 '백설햄'이다. 1970년대말 당시 동방유량의 압도적인 시장점유율(90%)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1978년 대두가공사업에 첫발을 내딛고 이듬해 육가공사업에 뛰어든다. 제일제당은 사료사업에도 1973년 진출해 배합사료업계를 선도하고 있으며 1978년에는 비료사업도 시작해 1980년대 중반부터 업계에서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제일제당은 이후에도 다시다, 햇반, 컨디션 등 다수의 히트상품을 개발하며 반세기 넘도록 대한민국 대표 식품기업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이광호 기자 k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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