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결 취지는 명확하다. 근저당권 설정 계약에 적용된 약관은 대출거래에서 우월한 지위에 있는 금융기관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고객에게 전가시키는 불공정하고 신의성실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무효라는 것이다. 담보와 같은 권리취득 비용은 담보권자인 금융기관이 부담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번 판결과 줄소송을 계기로 금융기관들은 그동안 갑(甲)의 위치에서 무리하게 고객에게 부담시켜온 것들이 없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어제 은행연합회가 발표한 대출금리 모범규준도 공허하다. 취업ㆍ승진한 고객에게 낮은 대출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음을 적극 설명하겠다는 등의 내용인데 창구에서 얼마나 지켜질지 두고 볼 일이다. 금리인하요구권은 2002년 도입됐지만 은행마다 기준이 달라 실적이 거의 없었다.
지난해 월가점령 시위는 금융권의 지나친 탐욕에서 비롯됐다. 그 전부터 미국에선 금융상품이 사람을 위해 만들어지고 금융기술 발전의 혜택을 더 많은 사람들이 누려야 한다는 '금융민주화' 주장이 주목받았다. 재산ㆍ지역 등의 차별 없이 평등하게,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금융 서비스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인데 우리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국내에서도 경제민주화 바람이 거세다. 금융기관들은 금융거래 상대방이 하청ㆍ납품업자가 아닌 '소비자'이자 '고객'임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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