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하나고 재단 이사장)과 중곡동의 한 재래시장에서 막걸리잔을 기울인 적이 있었다. 수개월 전의 일이다. 세간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김 이사장은 모든 금융계 이슈에 말을 아꼈다. "하나금융그룹의 일이야 다 잘 알아서 하겠죠. 말할 처지도 아니고…." 기자의 유도질문(?)에 좀처럼 넘어오지 않는 김 이사장이었다.
하지만 하나고등학교 얘기가 나오자 김 이사장의 눈빛이 달라졌다. "하나고 첫 입학생이 올해 고3이죠. 애들이 대학을 잘 가야 선순환이 이뤄질 텐데 말입니다." "하나고 학생들이 우수하지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성교육이예요. 특히 지덕체(智德體)보다 체덕지(體德智)가 중요하다고 가르치지요. 고3 학생들도 체육수업을 받게 한답니다."
이랬던 김 이사장이 며칠 전 갑작스러운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하나금융그룹 퇴임 후 처음이다. '하나고는 귀족고'라는 외환은행 노조의 비난성명에 대한 대응차원이었다. 하나금융 내부에선 김 이사장이 직접 나서는 것을 만류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 이사장이 "하나고가 귀족고로 매도되는 것은 곤란하다. 애들한테 피해가 가서는 안 된다"며 직접 나섰다는 후문이다.
여기서 하나고가 귀족고인지를 증명할 능력이 기자에겐 없다. 다만 연간 수업료가 1200만원(기숙사비 포함) 수준이기 때문에, '귀족고'라고 한다면 이런 주장이야말로 단순함의 극치이거나 위선이다.
2011년 학교의 세출예산 기준으로 학생 1인당 교육비는 하나고가 2천753만원으로 1위다. 2위가 청심국제고(2289만원), 3위가 민족사관고등학교(1990만원)다. 현대청운고(1411만원)와 용인외고(1320만원)가 다음을 잇는다.(시사저널 조사)
1인당 교육비는 말 그대로 학생의 교육에 들어가는 돈을 학생 한 명으로 환산한 금액이다.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에 재단지원금 등을 합한 개념이다.
1인당 교육비는 많을수록 좋다. 그래야 좋은 선생님, 좋은 시설에서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다. 반면 등록금은 쌀수록 좋다. 그래야 일반 서민들의 자녀도 학교를 다닐 수 있다.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1인당 교육비는 높고, 등록금은 싼 구조다. 그러려면 소위 재단전입금이 많아야 한다. 재단에서 돈을 많이 내줘야, 학생들은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재단전입금은 '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없는 게 문제'다.
외환은행 노조가 문제 삼고 있는 257억원(외환은행이 하나고에 지원키로 한 돈)은 말하자면 재단전입금이다. 250억원은 예치형태로 그에 대한 이자수익을 매년 하나고에 지원하겠다는 것이고, 7억원은 올해 현금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은행의 사회공헌활동은 노조에서도 적극 주장하는 바다.
다른 학교들의 사정은 어떤가.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립 중ㆍ고등학교에서 재단전입금은 '0'원이다. 청심국제고나 전주상산고 정도가 재단으로부터 연간 수십억원을 지원받는다. 학생등록금과 1인당 교육비 차이가 별로 없는 학교는 결국 학생들로부터 등록금 받아서 가르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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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하나고 입학설명회엔 외환은행 임직원이 하나은행 임직원보다 많이 몰렸다고 한다. 하나고는 올해도 정원 200명 가운데 40명 정도를 임직원 자녀 전형으로 뽑는다. 여기엔 외환은행 임직원 자녀들도 대거 지원했다. 하나고에 자녀들은 보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만약 노조원의 자녀가 하나고에 입학한다면 그 노조원은 귀족인가?
노조가 정치적일 수도, 정치적 주장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조의 이율배반은 볼썽사납다. 학생들의 명예를 훼손해 가면서까지 '귀족고' 운운하는 주장은 아무리 딴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치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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