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믹스 깊이들여다보기①]주거 통념과의 전쟁… 화학적결합 아직은 먼길
"왜 임대주택 사는 애가 이쪽으로 다니는거죠?" 한 마디 말이 상대방의 마음을 저리게 할 수 있음을 성북구 길음동의 아파트 입주민 차윤이(가명)씨는 절감한다. 분양주택 입주민의 일갈에 그의 속내는 까맣게 타들어간다. 한시적으로 살아야 하는 임대아파트에 머무는 것도 서러운데 아이마저 분양아파트 입주민에 의해 하대받는 세태에 울컥한다.
소셜믹스에 대한 개념은 의외로 단순하다. 사회의 다양한 계층을 혼합적으로 분산배치해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도다.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목적도 있다. 초기 이 제도에 대한 정부의 도입 의도가 그랬다. 1980년대 후반부터 들어선 공공임대아파트들이 분양아파트와 구분돼 지어지면서 사는 집에 따라 따돌림시키고, 따돌림당하는 사회적 단절 현상을 줄이겠다는 취지였다.
정부는 다양한 부작용을 우려, 임대와 분양이 도로에 의해 분리된 형태부터 단지는 물론 같은 동에 임대와 분양이 섞인 형태까지 다양한 유형을 고민했다. 시범사례를 통해 이 제도를 확산시키기 위해서다.
2007년 퇴직금을 털어 강남 일대 재건축 단지로 이사를 간 A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밤잠마저 설친다. 소형평형을 늘리라는 서울시의 요구를 받아들였지만 재건축 후 임대주택과 일반주택을 대등하게 짓겠다는 발표 때문이다. 저소득층을 배려한 정책이라는 점에서는 A씨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수억원을 들여 마련한 내집이 적절한 '재산권'을 보장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억울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임대주택 거주자와 분양주택을 희망하는 수요자간의 소셜믹스에 대한 이해의 간극은 급기야 임대아파트와 분양아파트 사이에 펜스가 들어서 단지간 이동을 막는 사태를 낳았다. 갈등과 차별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커졌다.
서울 길음동에 소재한 아파트에서 지난 2004년 발생한 사건은 이런 경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분양아파트와 임대아파트 사이에 들어선 철제 울타리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몸싸움까지 발생했다. 새 아파트를 분양받은 주민들은 거부했다. 급기야 울타리 개방으로 인해 쾌적한 생활을 방해받는다는 이유로 소송까지 걸었다. 임대아파트 주민들의 억울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법원마저 "울타리를 통해 아파트를 출입하지 말라"는 판결을 내렸다.
소셜믹스가 '현실에서 도입 불가능한 제도'로 전락했다는 지적마저 나오는 배경이다. 그럼에도 제도의 취지를 살려 보다 거부감이 적은 소셜믹스는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적잖다. 전문가들은 주택을 섞어 사회통합을 이루겠다는 의도는 좋았지만 거주자들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출발했다는 데서 실패의 원인을 찾으며 대안마련을 촉구한다. 김윤이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일부 단지의 경우 동별구분형에서 주동혼합형까지 다양한 유형을 도입했지만 공동체 의식을 조성하기 힘든 상황에서 물리적 혼합만을 강조하다보니 전반적인 통합을 이뤄내지 못했다"며 "이로인해 집값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는 분양주민과 상대적 박탈감을 더 느낀 임대주민들의 갈등이 더욱 깊어진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김리영 주택산업연구원 박사는 "소셜믹스의 허점은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차이에서 발생한다"며 "사회통합이라는 관점에서 긍정적인 영향이 크지만 경제적 수준 차이가 있는 주민들이 같이 거주함으로써 생겨나는 박탈감 같은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비록 서울시와 마찰은 있었지만 소형평형 확대와 같이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과정도 생각해봐야할 요소"라고 말했다.
배경환 기자 kh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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