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광복절 맞아 가족단위 관람객 ‘북적북적’

▲ 제67주년 광복절을 맞아 현저동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대형 태극기가 내걸렸다.

▲ 제67주년 광복절을 맞아 현저동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대형 태극기가 내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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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나석윤 기자] 장난꾸러기 꼬마 아이가 일일 역사선생님으로 변신한 엄마아빠와 함께 ‘독립투사’로 변신했다. 옥고를 치르고 고문을 당하는 순국선열들의 모습을 접하는 눈빛에서 어리광은 온데간데없었다. 설치된 안내문을 읽어 내려가는 모습에선 진지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15일 오후 제67주년 광복절을 맞아 서대문구 현저동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은 조국과 민족의 발자취를 더듬으려는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오전까지 폭우가 퍼부은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관람객들은 가족과, 연인과 함께 독립의 의미를 되새겼다.


특히 엄마아빠의 손을 잡고 역사관을 찾은 아이들은 옥사, 공작사(수감자들이 노역을 하던 공장건물), 사형장, 격벽장(수감자 운동장) 둘러보며 선조들의 혼을 체험했다.

관람객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인 곳은 전시관 지하의 고문실이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가들에 자행됐던 고문현장이 고스란히 재연돼 있었다. 책 속에서나 접하던 고문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아이들은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장면 하나하나를 세심히 살폈다.

용산구 후암동에 온 황성현(10) 군이 “엄마 엄마, 저것 좀 봐. 일본군들이 독립군 아저씨를 묶어 놓고 막 때려”라고 말하자 황 군의 어머니는 “독립운동 내용을 확인하고 자백을 얻어내려고 고문하면서 취조하는 거야”라며 “우리가 나라를 빼앗겨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이렇게 고문을 당했어”라고 설명했다.


고문현장의 생생한 전달을 위해 스피커에선 당시 상황을 재연하는 음성이 전달되고 있었다.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의 옥사 모습. 이 옥사는 두 차례 개보수를 제외하곤 1920년대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의 옥사 모습. 이 옥사는 두 차례 개보수를 제외하곤 1920년대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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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시선이 집중된 곳은 옥사였다. 옥사는 독립운동가들을 비롯해 해방 이후에는 독재정권과 맞서 싸웠던 민주화운동가들이 수감생활을 했던 역사적 현장이다.


현재는 지난 1923년 5월 서대문감옥에서 서대문형무소로 명칭 바뀐 이후 두 차례의 개보수를 제외하곤 1920년대 원형모습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관람객들은 옥사 앞에 마련된 TV를 통해 소개영상을 보는 동시에 문을 여닫고 옥사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살피기도 했다. 옥사 내부에는 투옥 중 입었던 의복과 각종 용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야외 공간 볼거리 역시 다채로웠다. 광복절을 맞아 옥사 건물 외부에는 대형 태극기가 걸려 바람에 나부꼈다. 아울러 1923년 건립돼 원형 모습 그대로인 사형장과 시구문(사형집행 된 독립운동가들의 시신을 옮기던 비밀통로) 등이 관람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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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수감자들의 운동장으로 활용됐던 격벽장, 한센병 수감자들을 격리시키기 위해 마련된 한센병사, 유관순 열사가 옥중 순국한 것으로 알려진 여성옥사 등에도 아이들의 물음에 답하는 엄마아빠의 모습이 이어졌다.


금천구 독산동에서 온 김희정(11) 양은 “우리나라가 힘이 없어 나라를 빼앗기는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며 “고문이 재연되는 모습은 너무 잔인했다”고 관람 소감을 밝혔다. 함께 온 김 양의 아버지는 “광복절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역사 공부도 할 겸 역사관을 찾았다”며 “당시의 상황이 관람객들이 보고 접하기 쉽게 잘 전시돼 있어 좋은 교육현장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나석윤 기자 seokyun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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