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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의원님들, 벌한테 절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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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민주주의', 집터 결정 시 정보공유→논쟁→선택 "지혜로운 의사결정 롤모델"

[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민주주의(Democracy)는 인간의 전유물인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그렇다. 그리스어 'demo(국민)'와 'kratos(지배)'의 두 낱말을 합친 'demokratia'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국민의 지배'를 뜻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시민권을 가진 남자들이 다수결원칙 아래 정치적 결정에 직접 권한을 행사하는 정부형태를 의미했다. 현재는 국민이 선출한 대표들을 통해 정치결정 권한을 대리하도록 하는 '대의(代議) 민주주의'가 보편적이다.
그런데 정치체제라는 틀을 벗어놓고 보면 반드시 인간만 '민주적'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갖춘 인간사회보다 더 광범위하고 활발하게 논쟁하고 이를 통해 만장일치로 최선의 선택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토머스 실리 코넬대 생물학과 교수가 연구를 통해 밝혀낸 '꿀벌의 세계'가 그렇다.

꿀벌들은 구성원의 지식과 지능을 효과적으로 결집해 훌륭한 집단 선택을 만들어낸다. 이 책의 저자인 토마스 교수는 꿀벌집단이 새 집을 고를 때 거치는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꿀벌집단을 관찰하다보면 늦봄이나 초여름 경 새로운 여왕벌의 출현으로 원래 여왕벌이 일부 일벌들과 함께 벌집을 나와 새로운 집을 찾아 나서는 현상이 나타난다. 분봉(分蜂)이라고 불리는 이사를 시작하기 전, 꿀벌집단은 최적의 집터를 구하기 위해 생사가 달린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우선 수 백 마리의 정찰벌들이 약 2~3일 동안 사방 5킬로미터가 넘는 지역을 비행하며 새로 집을 지을 만한 장소를 탐색한다. 정찰벌들은 각자 새집을 지을만한 속이 빈 나무 10~20개의 정보를 수집해 무리로 돌아와 다른 벌들에게 자신이 수집한 집터의 정보를 8자춤을 춰서 알린다.

이 때 정찰벌이 춤을 추는 강도는 '집터가 얼마나 좋은가'와 직결돼 있다. 벌들은 자신이 보고 온 집터가 별로라면 열심히 춤추지 않는다. 대신 최적의 집터라는 판단이 들면 아주 격렬하고 오래 춤을 춰 다른 정찰벌들에게 알린다. 저자는 이 과정을 '격렬한 논쟁'에 비유했다. 정찰벌들은 집터의 질에 따라 춤의 강도를 조절함으로써 최적의 집터를 더 많은 꿀벌들이 지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 경쟁을 몰아간다.

그렇다면 꿀벌들은 어떻게 만장일치를 이끌어낼까? 중립적인 입장의 정찰벌들은 많은 수가 지지한다고 해서 맹목적으로 그 뜻에 따라가지 않는다. 정찰벌이 특정 집터를 지지하는 춤을 출 때는 그곳을 스스로 방문해 좋다고 판단했을 때뿐이다. 즉 다른 정찰벌들의 의견에 휩쓸려 집터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각 정찰벌들이 독립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최적의 집터에 대한 편향이 형성되면 긍정적 피드백이 풍부해지고 지지하는 벌의 수가 점점 증가해 결국 만장일치로 새로운 집터가 결정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꿀벌들의 의사결정과정을 보여줌과 동시에 인간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첫째는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하라는 것이다. 꿀벌들은 후보 집터를 고를 때 선택가능한 모든 대안을 탐색하고, 각 후보 집터의 정보를 자유롭게 공유한다.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모두에게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꿀벌사회나 인간사회에 공통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다.

둘째는 '열린 논쟁을 통한 집단지식의 종합'이다. 최적의 집터를 지지하는 꿀벌은 강력한 춤으로써 다른 벌들을 지지자로 끌어들이지만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거나 반대의견을 억압하지 않는다. 모든 정찰벌은 어떤 집터를 지지할 때 다른 꿀벌의 판단이 아니라 자기만의 개인적인 평가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도 정보가 차단되고, 논쟁이 막혀버려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없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꿀벌에게서 배워야 할 점들이 무엇인지 이 책에 잘 담겨 있다.

꿀벌의 민주주의/토머스D.실러지음/하임수 옮김/에코리브르/가격 2만원



이상미 기자 ysm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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