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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경선칼럼]기권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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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란하다. 국민 된 도리를 하자니 심사가 뒤틀리고, 기권을 하자니 마음이 개운치 않을 듯하고. '투표를 하면 세상이 바뀐다'는 말도 '투표를 안 하면 잘못된 정치인을 욕할 자격이 없다'는 얘기도 귀에 잘 들어오질 않는다. 영 기분이 뒤숭숭하고 언짢다. 후보자들의 면면을 접하고 든 소회다.

4ㆍ11 총선 후보자로 등록한 이들은 모두 927명(246개 지역구 기준)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세금, 병역 등 국민의 기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과자도 수두룩하다. 그러고도 국민의 대표가 되겠다고 나섰으니 참 얼굴 두꺼운 사람이 많구나 싶었다.
지난 5년간 세금을 한 푼도 안 낸 후보가 23명이다. 연간 세금 납부액이 국민 평균 490만원에 훨씬 못 미치는, 100만원도 안 되는 후보도 245명(26.4%)에 달한다. 그뿐 아니다. 한 차례 이상 세금을 내지 않은 이들이 104명(11.2%)이나 된다. 새누리당 후보가 24명, 민주통합당 19명, 자유선진당 8명 등이다. 후보 등록을 하기 전에 대부분 체납액을 다 냈다고 한다. 선거에 나설 요량이 아니었더라도 밀린 세금을 다 냈을까?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후보자도 151명에 달한다. 남성 후보자(861명)의 17.5%다. 일반 국민의 평균 면제율 4.1%의 4배가 넘는다. 민주통합당 후보가 46명, 새누리당 21명, 통합진보당 13명, 선진당 7명 등이다. 전과자도 많다. 186명, 20%에 이른다. 민주통합당 61명, 통합진보당 29명, 새누리당 14명, 자유선진당 13명 등이다. 시국사건 관련자도 있지만 뇌물죄, 사기 등 파렴치범도 적지 않다. 세금 체납, 병역 미필, 전과 등 '불명예 3관왕'도 9명이나 된다.

비례대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여야 각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자 188명 중 남성은 109명. 이 중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후보가 25명(22.9%)이다. 전과 기록이 있는 후보자는 38명(20.2%)이다. 지난 5년간 세금 납부 실적이 '0'인 후보가 9명, 한 번 이상 체납 경력이 있는 후보자가 26명(13.8%)이다.
세금을 제대로 내지도 않은 사람들이 복지를, 경제민주화를 주장하고 법을 어겨 감옥살이를 한 사람들이 법을 고치거나 새로 만들겠다는 꼴이다. 제 맘대로 후보 등록을 할 수 있는 무소속은 그렇다 치자.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도덕성을 갖춘 새 인물을 공천하겠다고 한 공당의 후보조차도 그러니 문제다. 마치 부러 부적격자를 고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니. 그러고도 표를 달라고 손을 내민다. 뻔뻔하기도 하다.

어느 정치 컨설턴트는 선거에서는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고 했다. 과거를 돌아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번에도 그의 말처럼 '옳지 않은 강한' 후보자가 다수 당선된다면 그런 국회가 국민의 삶을 제대로 돌보겠는가. 오히려 국민을 힘들게 하는 난장판이 돼버리는 건 아닐까. 19대 국회가 걱정이란 비관론이 나오는 이유다.

사정이 이런데도 투표를 꼭 해야 하나. 좋아하는 정당도, 찍고 싶은 후보도 없다. 새누리당 후보나 민주통합당 후보나 무소속 후보나 다 그 나물이고 그 밥이다. 내겐 그렇다. 누구를 선택해야 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마뜩지 않은 게 당연하지 싶다.

그래도 투표는 해야 한다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그도 저도 아니라면 차악(次惡)이라도 택해야 한다고? 후보자 모두가 부적격자라고 생각이 들 땐 아무도 뽑지 않을 권리도 주어져야 하지 않는가. 기권을 위한 변명? 내 속이 지금 이렇다.

"…이러니 저러니 해봐야 뭐가 달라지겠나/ 괜히 귀만 더러워지지… 자, 술이나 먹게/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그만하고…"(백창우 '술이나 먹게')



어경선 논설위원 euh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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