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서편제' 직접 보니... 동양화처럼 은은한 여백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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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시뻘건 얼굴이 터질 듯 소리를 토해내는 소리꾼. '얼씨구' 하며 추임새를 넣는 고수. 적막을 깨는 거친 목소리와 북의 둔탁한 타격음만으로 완성되는 정적(靜的)인 음악의 세계. 이만하면 하품과 졸음을 견디는 관객의 모습이 연상되지만, 뜻밖에도 객석은 콧물 훌쩍대는 소리로 요란하다. 2일부터 재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서편제' 현장이다.


지난해 뮤지컬 어워즈를 휩쓴 '서편제'가 몸집을 키워 돌아왔다. 두산아트센터의 작은 무대에 오밀조밀 담겼던 송화와 동호, 유봉의 굴곡진 인생 여정은 유니버설아트센터의 큰 무대로 넉넉히 옮겨갔다. 공간이 넓고 깊어지면서 답답한 한지(韓紙) 가림막과 회전무대의 활용에도 여유가 생겼다. 오케스트라를 무대 위로 올려 세 사람의 이야기를 시청각적으로 뒷받침하는 실험도 가능해졌다.

내용에도 변화가 있었다. 초로의 뮤지션이 된 동호가 과거의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을 액자식 구성으로 보여주는 구조나 주제에는 변함이 없다. 대신 '미니'와 '동호 모' 등 조연 캐릭터의 비중이 커졌다. 특히 동호와 송화의 인생에 관여하는 미니의 캐릭터가 선명하게 다듬어졌다. 초연에서는 단지 동호를 유혹하는 클럽 가수 정도로만 그려졌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동호만의 음악 세계를 찾게 도와주는 조력자로서의 색깔이 부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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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 역시 초연 당시의 모호한 캐릭터가 한층 보완됐다. 조광화 극본과 이지나 연출의 재해석을 통해 동호는 뮤지컬 무대에서 가장 역동적인 인물로 되살아났다. 그러나 그저 방황하던 동호의 감정이 실체 없이 송화에 묻힌 것은 옥에 티였다. 소리를 향한 송화의 외길 인생과, 송화에 대한 동호의 복잡한 마음과 동경은 '서편제'를 이루는 씨줄과 날줄이다. 이번 무대에서 이런 성격이 확실히 정리되면서 감정의 파장은 더 커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동호 역에 새로 투입된 김다현은 아직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줘 아쉬움을 자아낸다. 서범석 유봉의 견고한 소리와 차지연ㆍ이자람 두 송화의 애절한 소리에 비하면, 김다현의 동호는 불안한 음정과 지나친 비음으로 미묘한 불협화음을 만들어낸다. 열린 캐릭터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인 만큼, 새로운 무대에의 빠른 적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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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은 음악의 힘으로 넉넉히 극복된다. 초연 당시 음반으로 발매돼 전량 매진될 정도로 호응을 얻었던 넘버들은 이번 무대에서는 편곡을 거쳐 한층 풍성해진 음감을 들려준다. 특히 '살다보면', '흔적', '한이 쌓일 시간', '시간이 가면' 등은 '초보 뮤지컬 작곡가'라는 윤일상의 경력이 무색할 정도로 극에 잘 녹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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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편제'가 그랬듯 뮤지컬 '서편제' 역시 처음부터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작품은 아니다. 꼬마 송화와 동호가 어른이 되고 유봉과 갈등을 빚으며 이별과 만남을 겪는 과정은 서서히 관객의 가슴에 한(恨)의 정서를 쌓이게 한다. 해소되지 못하고 먹먹해진 감정은 마지막 '심청가'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공연 내내 은은하게 절제됐던 조명과 영상 장치도 이 순간은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대변하듯 화려하게 공연장을 뒤덮는다. 그리고 그들은 과연 행복해졌을까. 동양화처럼 은은한 여백을 남긴 채 마무리되는 엔딩은 극장 문을 나설 때까지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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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호(공연칼럼니스트)·태상준 기자 birdc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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