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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詩] 고은 '다시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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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파람이 나오는 것을/가볍다 말자/죽어가는 사람의 입에서/휘파람이 나오는 것 보았다//잔 바람 이는 것을/가볍다 말자/잔 바람에/누운 비닐조각 들썩이는 것 보았다//무궁하여라 푸르러라/하늘이라고/오래 지나온 푸른 역사라고/그런 것 속의/아주 작은 짐승들의 터럭을/가볍다 말자/천만근 무거웠다가 그것이었다

고은 '다시 보면'

■ 세상의 문제들은 처음엔 사소하다. 가벼워 보이는 것, 그것이 문제다. 신문사 편집회의는 늘 몇 개의 가벼운 문제들을 만나고 그것이 커져가는 걸 발견한다. 우리의 생각이 가지는 중요한 약점은 타성(惰性)이 아닌가 한다. 어떤 생각이 생겨나면 그것을 번복하거나 뒤집거나 재고하는 것이 무척 어렵다. 선입견이 편견이 되고, 편견이 고집이 된다. 인식을 수정하는 일, 문제를 다시 보는 일. 우리가 부단히 깨어있어야 하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시인이 아름다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가 무뎌져 있고, 문득 잊고 있을 때, 시인은 그걸 뚫어지게 바라본다. 죽어가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휘파람은, 우리가 휘파람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일상의 경험을 가장 심각하고 절박하게 갱신한다. 삶의 마지막 시간, 혹은 죽음의 첫 시간을 들어올리는 휘파람이, 과연 가벼운가?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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