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술술 酒冊이네요..'술' 명인 조정형의 '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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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유쾌하다. 변영로의 '명정 40년'은 언제 읽어도 그렇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술에 취한 상태를 말하는 '명정(酩酊)'이 제목에 들어가 있는 건만 봐도 짐작할 만하다.


서설(序說)을 펼쳐들 때부터가 그 유쾌함의 시작이다. 변영로는 여기서 '남들은 툭하면 30년 해외에서 민족 혁명을 하였느니 40년 독립 운동을 하였느니 대성질호하는 이 판에 내 무삼 할 일 없이 50 남짓한 나이로 40여년을 호리건곤(壺裏乾坤)에 부침하단 말가'라고 썼다.

독립 운동과 호리병 속 천지가 묘하게 어우러진다. 술에 대한 그의 애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대목이다.


'끝끝내 한결같이 마시고 마시고 꽃 꺾어 산 놓고 또 마시다가 마지막 날 도래할 때 장렬한 의부나 용사처럼 흔연취사(欣然就死)할 뿐이란 것'이라고 말하는 변영로처럼 이 책의 저자도 '술'로 한평생을 살았다.

그 방식은 서로 달랐다. 변영로의 것이 연정(戀情)에 가까웠다면, 저자의 것은 연정(硏精)이었다. 또 사명감이었다.


'명주보감'을 쓴 조정형씨는 중요 무형문화재 6호인 이강주 기능 보유자다. 조씨는 전북대 농화학과에서 발효학을 공부한 뒤 보배소주 연구실장, 한일소주 기술고문 등으로 20년 넘게 일했다. 전통주를 되살리려 집까지 팔아가며 애를 썼던 그는 결국 이강주를 제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술'에 바친 수십 년 인생을 2003년과 지난해 각각 '우리 땅에서 익은 우리 술'과 '다시 찾아야 할 우리의 술'이란 제목의 책으로 펴냈던 그다. 그것만으론 부족했던 모양이다. 못다한 얘기를 담은 '명주보감'으로 우리를 다시 찾아온 걸 보니 말이다.


'명주보감'엔 술의 어원, 인류가 처음 빚기 시작한 술, 우리나라 술의 역사, 전통술이 기록된 옛 문헌 등 술에 관한 가지각색의 이야기가 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생활 속 술 이야기'였다. 이태백과 두보의 술 사랑, 건국 설화 속의 술, 장보고를 죽게 한 친선주 등을 주제로 한 이 장에서 유독 기억이 나는 건 연암 박지원의 술 낚시다.


연암은 집이 몹시 가난해 술을 맘껏 마시지 못했는데, 그런 그가 막걸리 두 잔을 손에 쥘 수 있었을 때는 손님이 올 때였다. 어느 날 연암은 하도 술 생각이 간절해 집 근처를 서성이며 솔 손님이 될 사람을 찾고 있었다.


얼마쯤 지나 길을 지나던 한 선비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그. 그는 자기 잔을 먼저 훌쩍 마시고 다른 잔마저 쭉 들이키고는 "뭐 이상하게 생각하실 것 없소이다. 오늘은 그저 영감이 내 술 낚시에 걸려든 셈이니까요"라며 웃었다.


그날 밤 그 선비 이승지의 말을 들은 정조는 "그는 분명 연암 박지원일 것이오. 자기의 재주만 믿고 방약무인하여 벼슬을 주지 않았는데 그렇게 궁해졌다니 안됐구나"라며 안의제감 자리를 제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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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보감'은 이렇듯 '명정 40년'과는 또 다른 유쾌함을 우리에게 전한다. 양조의 기법과 과실주 담그는 법, 지역별로 본 우리 술 등에 대한 내용을 함께 담아낸 게 이 책의 특징이다.


명주보감/ 조정형 지음/ 서해문집/ 1만5000원


성정은 기자 j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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