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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불> vs <욕불>│욕망의 불꽃은 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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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욕망의 불꽃>이 지난 27일 종영했다. 처음에는 작은 불씨인줄 알았던 윤나영(신은경)의 욕망은 어느새 타오르는 불꽃이 되고, 뜨거운 화염이 되어 제 자신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잦아든 줄로만 알았던 욕망의 재점화를 암시하며 대서양그룹 일가와 그들을 둘러싼 이들의 연대기는 종료되었다. 이 욕망에 대한 가장 선연한 찬가를 김선영 TV평론가는 진일보한 재벌 드라마와 그 안에서 다층적으로 가능한 여성 캐릭터의 등장으로, 조지영 TV평론가는 현대판 사극과 윤나영이라는 인간의 비극으로 각기 다르게 바라보았다. /편집자주

재벌드라마의 역사는 MBC <욕망의 불꽃>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있다. 이 이전의 재벌서사가 맨주먹 성공신화의 1세대 이야기와 후계자 경쟁구도의 2세대 이야기를 주로 다뤘다면, <욕망의 불꽃>은 한국 현대사 반세기와 함께 성장한 대서양그룹 김태진(이순재) 일가를 통해 현재 우리 사회의 ‘로열패밀리’로 정착된 3세대 이야기를 포함한 재벌서사를 망라한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뛰어든 윤나영(신은경)이라는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그간 남성들의 전유물이던 재벌성장서사에 여성이 개입하는 방식 역시 대폭 수정한다. 요컨대 <욕망의 불꽃>은 최근의 재벌드라마들이 보여주는 서사의 변화와 여성 캐릭터의 어떤 경향을 징후적으로 예시한 작품이다.

3세대 재벌드라마의 등장


“기업이 자릴 잡으려면 삼대를 가야한다. 시작은 내가 했고, 정리는 영민이가 하고, 기업을 크게 키우는 건 민재 몫이다. 민재가 잘 돼야 대서양이 백년 이백년 영광을 누릴 수 있다.” 김태진 회장의 대사처럼 <욕망의 불꽃>을 선두로 한 최근 재벌 드라마들의 화두는 이제 부의 탄생에서 그것의 영원한 지속으로 옮겨갔다. MBC <로열패밀리>는 JK그룹의 지주사전환을 통한 경영권 세습 문제를 다루고 있고, SBS <마이더스>에서는 재벌들이 상속세를 물지 않기 위해 길게는 십년 이상의 치밀한 상속 준비 기간을 둔다는 대사가 나온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3세대 재벌드라마는 후계자 경쟁 구도 못지않게 1세대와 후계자의 갈등을 주요하게 다룬다. <욕망의 불꽃>의 영민(조민기)은 부회장직에 오른 뒤 아버지 시대의 종언을 공공연히 선언하고, <마이더스>의 인혜(김희애)는 아버지의 부동산투자 사업을 낡았다고 말하며, <로열패밀리>는 아예 공회장(김영애)과 인숙(염정아)의 갈등이 극의 중심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립이 1세대 창업 이데올로기와의 결별을 의미하진 않는다. 3세대 재벌드라마는 오히려 갈등하다가 전 세대를 닮아가거나 그들보다 더 ‘괴물’이 되어가는 후계자들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일궈낸 기업들이 내뿜는 공해들을 뿌리째 뽑아버리는 것”이 목표였던 환경공학도 영민은 야망에 눈을 뜨자 형제까지 밀어내며 점차 아버지를 닮아가고, 인혜는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효율성을 극대화한 수익 사업에만 몰두한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친서민 기업 이미지마케팅이나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포장을 첨가하고, 변호사들을 비서처럼 부리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과거의 폭력정권과 다른 합법적 제도의 수호를 받는 재벌들이 꿈꾸는 것은 결국 부의 무한한 지속에 대한 탐욕이다. “일 년에 한두 번씩 스위스에 가서 수명을 연장”하는 태진의 불로불사의 꿈처럼. 3세대 재벌드라마는 1세대 성장 이데올로기가 이미 내면화되고 갈수록 공고화되는 우리 계급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윤나영, <욕망의 불꽃>이 남긴 최고의 수확


가부장적 재벌서사에서 여성들은 대개 재벌의 간택을 받는 신데렐라이거나 소외자로서의 트라우마를 대변하는 복수자의 형태로 그 서사에 개입한다. <욕망의 불꽃>은 한 재벌의 성장사와 그 뒤에 잉여와 잔존의 형태로 숨어있는 수많은 여성들의 ‘흑역사’가 제대로 격돌하는 작품이다. 태진이 대서양그룹의 오너가 되는 동안 그의 배다른 자식들을 낳고 사라져간 많은 이름 모를 여인들의 한은 그의 성장 서사 곳곳에 균열을 내고, 그 가장 심층부에는 그와의 부적절한 관계로 자살에 이른 나영 모친의 이야기가 자리하고 있다. 태진이 재벌성장사의 주체라면, 그의 신데렐라 며느리이자 복수자인 나영은 그 서사에서 폭력적으로 배제당한 여성들의 한을 대변하듯 욕망의 주체가 되어 그와 대적하고 그의 원죄를 응징한다.
이 캐릭터의 결정적 힘은 모두 가면을 쓴 김태진 일가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연기력을 지녔다는 데 있다. 나영의 욕망을 꿰뚫어보았다고 생각했던 노회한 태진마저도 결국 그 진짜 속은 읽지 못했으며, 그녀는 시종일관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로 남는다. 이렇듯 뛰어난 ‘화장술’은 <로열패밀리>의 인숙과 <마이더스>의 인혜에게서도 발견되는 특징이다. 이들의 가면은 기존 악녀 캐릭터의 단순한 이중성을 넘어 남성의 일방적 시선과 해석에 쉽게 포섭되지 않는 다층적 욕망의 얼굴이라는 데서 여성 캐릭터의 표현 영역을 더 확장시켰다. 이는 계급사회의 최상층에 위치한 가부장재벌의 대척점에서 최하층에 위치한 하류 계급 출신 여성이 스스로 찾아낸 고도의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빨간 드레스로 치장한 나영의 미소 띤 얼굴의 클로즈업 엔딩신은 이 드라마의 진정한 주체가 누구였는가를 확실히 알려준다. 그 강렬한 얼굴이야말로 <욕망의 불꽃>이 남긴 최고의 수확일 것이다.
글 김선영


MBC <욕망의 불꽃>은 과연 제목에 충실했다. 불꽃이 아니라 화염이 타올랐다. 처음엔 윤나영(신은경)만의 불꽃인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등장 인물 대부분 욕망의 화신이었다. 욕망을 몰랐거나 혹은 드러내지 않았을 뿐, 대서양 그룹 안팎은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의 장으로 변한다. 뻔한 설정에서 시작한 드라마는, 외적으로는 경영권 승계를 본격 왕위 계승으로 은유하는 사극 구조를, 내적으로는 운명을 비껴나가려 몸부림치다가 덫에 걸리는 서양 희곡의 비극적 정조를 연상시켰다.

이것은 현대의 사극이다


대서양 그룹의 경영 승계를 둘러싼 암투는 전형적인 사극의 구조를 따른다. 제왕/회장은 끊임없이 아들들의 경영 능력과 충성도를 시험한다. 두 가지 능력은 충돌이 불가피한 것이어서 아들들은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제왕/회장의 의중을 잘못 읽은 아들과 그 가계는 쉽게 버림받는다. 대체로 제왕/회장의 아들끼리는 불화하기 쉬운데, 이는 각기 어머니가 다르다는 근본적인 이유도 없지 않다. 장자는 당연히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한 왕권/경영권을 뺏길까 조바심치며 무리수를 두고, 아우들과 그 처자들 또한 왕권/경영권을 승계받으려 합종연횡을 거듭한다. 며느리들은 끊임없이 시아버지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한다. 예상했던 ‘자기 몫’이 적은 자손들은 분노한다. 적의 적은 그래서 동지가 된다. 윤나영과 남애리(성현아)가 반목과 연대를 거듭하는 모습은 극히 현실적이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재벌이란, 그 가문의 속 얘기란, 무슨 왕실을 엿보는 듯한 착각을 준다. 신분 상승이 갈수록 불가능해지는, 태어난 신분이 살아갈 신분을 점점 더 결정짓는 한국 사회에서, 재벌 가문으로의 진입은 장옥정(희빈 장씨) 스토리만큼이나 흥미진진한 것이다. 그래서 ‘주식회사’의 경영권을 어째서 당연히 세습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실종된다. 현실에서 재벌들은 늘 아들 딸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있고, 가끔은 그 세습 지분에 반기를 품은 ‘형제의 난’까지 펼쳐지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현실의 구도를 대부분 따르고 있으니, ‘조선왕조 500년’처럼 그려지는 경영권 승계가 별로 유난스러운 것도 아니다. 태종이 양녕을 내치고 충녕을 택한 유명 에피소드만큼이나, 후대에는 어느 재벌가의 경영권 승계 스토리를 단골 ‘사극’ 주제로 써먹을지도 모를 일이다.

윤나영, 그녀가 만든 지옥에서


윤나영은 자신의 운명과 끝없이 불화하고 투쟁했다. 애초에 언니의 몫이었던 대서양의 며느리 자리를 윤나영이 가로챈 방법은 무려 ‘강간 교사’ 였다. 그 자신 또한 청부 폭력의 희생자였으나, 윤나영은 언제나 폭력과 힘의 유혹에 넘어갔다. 미수에 그치긴 했지만 남편의 여자 등 뒤에서 승용차를 돌진시키기도 했고, 백인기(서우)의 어두운 과거를 만 천하에 드러냈다. 윤나영의 목표는 명징했고, 그녀는 목표를 향해 말 그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가난했던 과거가, 혼전 출산이 그녀의 발목을 잡았지만 매번 기적적으로 회생했다. 그러나 윤나영은 끝내 자가증식하는 욕망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하나도 잃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던 그녀에게선, 끝내 운명을 벗어날 수 없었던, 고전 희곡의 주인공 같은 면모가 스친다. 장기판의 말들을 조종하듯 주변 사람들을 쥐락펴락하던 김태진(이순재)은 언뜻 이 장기판의 주인이자 제왕 같았으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던 그도, 스스로 자초한 운명을 거스르지는 못했다. 승자 독식이라는 원칙이 지배하는 이 치명적인 장기판에서 살 수 있는 길은, 역설적으로 장기판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처음부터 가진 것이 하나도 없었고, 가지려고도 하지 않았던 윤정숙(김희정)이 그랬고, 대서양 형제간의 암투에서 기권한 김영준(조성하)가 그랬다. 마지막 순간 경영권을 포기했던 김영민도 가까스로 아비규환 속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온전히 ‘가족’을 회복하고 어렵게 얻은 평화도 잠시, ‘경영권’을 향한 윤나영의 욕망은 다시금 꿈틀댄다. 그러니까 윤나영은 다시 2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인물이다. 그녀가 흘렸던 대부분의 눈물은 반성도 후회도 아닌, 다만 억울함에서 나온 것이었다. 애초에 며느리감으로 선택받지 못한 억울함, 민재가 좋아하는 여자가 하필 친 딸이라는 억울함, 김태진이 아니라 윤상훈의 딸로 태어난 억울함… 그런 그녀가, 악인이었나? 물어본다면 쉽게 답하기 어렵다. 그녀는 그녀 스스로 택한 지옥에서 살았고, 거기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매번 스스로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격이라는 이름의 지옥이었다. 누구도 거기 갇히면 빠져나올 수 없다. <욕망의 불꽃>은 그래서, 뚝심으로 밀어붙인, 무서운 비극이다.
글 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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