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늘리면 내수 부족사태 우려 '진퇴양난'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최근 몇 개월 새 국제 원자재가격이 배 이상 급등하면서 국내 제당ㆍ제분ㆍ타이어업체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국제 시세를 반영해 국내 가격을 올려야겠지만, 서민 물가 안정이라는 정부 방침에 밀려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설탕ㆍ밀가루, 내수-수출가 역전 =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CJ제일제당 의 설탕(하얀 설탕 15kg) 수출가격은 올해 1월 915원에서 환율하락, 국제 원당가격 안정 등으로 5월에는 699.6원까지 하락했다. 이후 6월 804.8원을 기록한 뒤 12월 현재 1017.5원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설탕의 국내 판매 가격은 올해 8월 73원 인상된 933원으로, 수출가격과 85원 정도 차이가 나고 있다. 이러다보니 CJ제일제당의 3분기 영업이익은 819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30.7%나 급감했다. 3분기 누계실적으론 21.9% 줄었다.
밀가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밀가루 수출가격은 올 1월 t당 550달러에서 10월 690달러로 상승했으나 CJ제일제당, 사조동아원 , 대한제분 등 국내 제분업체들은 올 1월 국내 판매 가격을 일제히 6~8% 가량 내린 뒤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한편 국제시장에서 원당 가격은 지난달 9일 33.11센트로 1980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또 원맥은 부셸당 7달러대로 올 상반기에만 70% 가량 올랐다.
◆"수출비중 늘리면 국내공급 부족사태 우려" = 문제는 제당ㆍ제분업체들이 수출 물량을 늘리고 싶어도 못한다는 데 있다. 현재의 시세대로라면 수출을 늘려 이익폭을 늘리고 싶지만 그럴 경우 국내 시장 공급량을 맞추지 못해 설탕 및 밀가루 부족 사태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제분 관계자는 "국내 밀가루의 수출량은 아직 미미하지만 품질이 좋아 수출을 원하는 나라가 많다"면서 "내년 1월 수출되는 물량의 경우 이미 지난 10월에 25% 오른 가격으로 계약을 체결했다"고 설명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올해 중국에서는 설탕 시세가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는 등 설탕 수요가 크게 늘어 수출 요청이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다"면서 "그러나 당장의 이익만을 생각해 수출 물량을 늘릴 경우 국내 시장에서 설탕 부족이라는 큰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타이어 수출값 '인상', 내수값 '동결' = 타이어도 정부의 가격 인상 억제 정책으로 인해 내수와 수출가격간 격차가 급격하게 좁혀지고 있다.
한국앤컴퍼니 와 금호타이어 는 지난달 북미 수출 가격을 각각 6% 가량 인상하는 등 올해 수출가격을 15~20% 가량 올렸다. 하지만 내수 가격은 지난 3월 인상 이후 지금까지 동결된 상태. 원자재인 천연고무가격이 연초 대비 30% 가량 오르면서 내수 물량에 대해서도 인상이 불가피하지만 정부 눈치를 보느라 올리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한국타이어의 수출가격(225/40R 18 기준)은 지난해 12월 개당 100달러였지만 이달에는 130달러대로 상승했다. 반면 내수가격은 개당 140달러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정부의 고민 또한 깊어지고 있다.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세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강제적으로 업체들의 가격 인상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면서 "특히 최근 들어 천연고무 가격이 뛰고 있는 상황을 알기에 권고하기가 조심스럽다"고 전했다.
조강욱 기자 jomar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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