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채제민은 정이 많다. 대상은 다양하다. 가족, 친구들, 부활. 그리고 25년을 함께한 드럼스틱. 음악의 길을 후회한 적은 없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애착은 더 짙어졌다. 인생을 모두 쏟은 만큼 자부심도 생겼다.
“밴드에서 드럼은 기둥과 같다. 중심을 잡고 묵묵히 서야 밴드가 바로 설 수 있다.”
티삼스 해체 뒤 채제민은 눈앞이 캄캄했다. 막막함은 이내 방황으로 이어졌다. 올바른 연주가의 삶을 알려줄 길잡이가 필요했다. 한참을 해매이다 그는 문영배의 연습실을 찾아갔다. 진정한 연주가로 거듭나고 싶은 마음에 무턱대고 제자를 자청했다.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은 수하생활의 시작. 그렇게 시간은 4년이 흘러갔다.
“드럼 기교와 음악인의 도리에 대해 많이 배웠다. 그때 선생님의 조언 덕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카메라맨을 구할 돈이 없어 셀프카메라 방식으로 연주를 촬영했다. 수익이 전무했지만, 강의를 올릴 때마다 보람을 상당했다.”
교육활동은 지금도 계속된다. 대학 강단에서 실용음악을 가르친다. 학교의 기대치는 현장 학습 등의 실습 수준. 그러나 채제민은 틈틈이 이론을 정리하며 공부에 매진한다. 그래야만 올바른 교육을 할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즐거움. 학생들이 스스로 선택한 음악에서 흥미를 찾도록 도와준다. 사실 음악계 사정은 좋지 않다. 졸업생 가운데 10%정도만이 음악을 이어나간다. 현장에서 뛰는 음악가로 그는 책임을 통감한다. 제자들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교편을 잡았지만 그는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연주가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 지를.
“마지막 수업에서 ‘최고가 돼라’고 당부하는 내 모습에 슬픔을 느낀 적이 많다.”
25년의 때가 묻은 드럼스틱. 그에게도 힘든 시간은 숱하게 있었다. 지금껏 견뎌낸 건 모두 밴드 덕이었다. 조직이 주는 유대감과 책임감이 음악을 계속 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함께 해야 모든 쉽게 이겨낼 수 있다. 제자들에게 밴드를 권하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채제민 역시 영원한 부활멤버를 꿈꾼다. 부활은 어느덧 가족 같은 존재가 됐다. 항상 화목하진 않았지만 편안하고 정이 넘친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두렵지 않을 만큼 든든하기까지 하다. 그는 믿는다. 인생 마지막까지 부활과 함께 할 것이라고. 그래서 묵묵히 집은 드럼스틱은 오늘도 가볍게만 느껴진다.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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