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분이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주말에 식구들과 시골집에 놀러 오세요'라고. 식구들이라는 단어가 약간 어색했습니다. '세 식구, 네 식구, 다섯 식구'는 편안한데 둘일 경우에는 '단 둘'이라고 말하는 것이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머릿속 필름이 거꾸로 돌아가면서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아빠, 빨리 나와!’,
‘언니 뭐해?’
‘잠깐만’,
‘야! 나 늦었어’,
‘응. 다 됐어’….
목욕탕이 하나 뿐인 아파트에 살 때 우리 식구의 아침은 화장실 앞에서 소리 지르기로 시작되었습니다. 프랑스에 있을 땐 아무리 작은 아파트라도 목욕실과 화장실이 분리되었기에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우리나라에선 각자의 필요가 다르더라도 한 공간을 같이 사용 해야 하기에 아침은 소란할 수밖에 없습니다.
식탁에서도 와글와글 이것 먹어라, 저것 먹어라, 빨리 먹어라 등 각자 나가는 시간이 다르니 오다가다 먹기도하고, 제대로 천천히 먹지 않는다고 꾸중도 하고….
야단법석의 세월이 그렇게 금방 지나갈 줄 몰랐습니다. 지금은 단 두 식구가 살기에 방들은 비어있고, 각자의 목욕탕이 있어서 소리지를 필요도 없고, 오히려 냉장고에 있는 음식 재료가 상할까 걱정할 정도입니다. 며칠 전 아침 식사를 준비하려니 별로 신통한 재료가 없었습니다. 냉장고에 있는 온갖 가능한 것은 다 꺼냈습니다. 우선 최근에 사온 작가의 작품 접시 두 개부터 나란히 두었습니다. 그 위에 계란 하나 삶아 둘로 나누고, 삶은 감자도 둘로 나누고, 귤·키위는 반쪽씩, 딸기는 5개….
조그만 과일용 도마와 칼로 가볍게 차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 문득 어릴 적 소꿉놀이가 생각났습니다. 그 시절에는 흙으로 밥을 짓고, 풀 뜯어 반찬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진짜 재료로 소꿉놀이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소꿉놀이 할 때는 각자 역할을 분담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가장 힘센 남자애가 제일 좋은 역을 맡습니다. 임금님을 하기도 하고, 선생님도 합니다. 스스로 아빠 역을 주고는 자기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엄마 역을 맡깁니다. 저는 엄마를 하고 싶었는데, 그 남자애가 다른 여자애를 고르는 바람에 저는 식모를 했습니다. 어떤 날은 가위, 바위, 보로 역할을 나누었습니다. 그날은 계속 지기만 해서 저는 목에 끈을 매고 주인 뒤를 따라 다니는 강아지를 했습니다.
인생이 소꿉놀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각자의 역할이 있습니다. ‘너는 신랑, 나는 각시’의 역할로 한 집에서 살기도하고, ‘엄마와 딸’, ‘선생님과 학생’, ‘사장님과 직원’ 등 많은 역할이 나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루의 소꿉놀이가 끝이 나면 다음날에는 다른 주제로 배역을 다시 정해 놀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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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항상 원하는 역할만 하면서 살 수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역할이든, 원하지 않는 역할이건 매일 매일의 소꿉놀이를 재미있게 하면서 사는 한 해를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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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포하우스 대표 오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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