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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잣나무골편지]'이백리 장정'..나의 벗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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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일요일 오전 열시가 넘어서 잠 깼다. 무려 열두시간을 자고 일어난 것이다. 온몸이 욱신거렸다. 그새 부엌에서 아이들과 아내가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들렸다. 구수한 감자탕 냄새도 밀려왔다.
 "잘 잤니 ? 얘들아..."
 아이들에게 간단히 인사하고 아내와 눈을 마주쳤다
 "밥 달라고 보채서 아빠 일어나면 먹자고 실랑이하는 중이야. 몸은 괜찮아.?"
 아이들은 감자탕을 먹겠다고 아내를 조르고 있는 터였다.
 "깨우지 그랬어."
 나는 식탁에 앉자 허기를 느꼈다. 허겁지겁 밥을 먹자 평강이가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아빠 밥 먹는 게 꼭 노숙자같다.크크크 !!"
 나는 지지난밤 열한시경부터 무려 스물두시간 반에 걸쳐 여의도에서 잣나무골까지 걸어서 퇴근했다. 무사히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사투를 벌인 느낌이다. 한강변을 따라 걸어서 잣나무골에 이르렀던 기억은 올해 나의 10대 뉴스 중 톱이다.귀갓길 도보여행을 동료들에게 공표하고 후원을 구하면서 좀 허황하지만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명분을 달았었다.여의도에서 잣나무골까지 그 '절대반지'를 옮기는 일은 한 생애의 축소판 같았다.

 <나의 동지들 그리고 적들>
 11일 토요일 밤 열한시 당직 근무를 마치고 후배들의 배웅을 받으며 걷기 시작했다. 날씨가 흐려서인지 공기는 무거웠다.그래도 따뜻한 날씨다. 바람 한 점 없다.강건너 불빛들은 잔잔히 부서지는 파도의 등을 타고 남쪽까지 건너와 나와 동행해줬다.갈대들도 살랑살랑 손짓했다. "잘 걸어라" 말을 건네며 응원을 보냈다.
 여의도를 돌아서 지하철 1호선이 지나는 노량진 앞부터 긴 굴다리가 나왔다.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등산길이라면 인사라도 나눴을 것이다. 굴다리 아래 매연이 가득 차 숨이 막혔다. 시끄러운 소음에 전화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다리 상판이 떨어지지 않을까 괜한 걱정마저 들었다. 이렇게 시끄러운 길을 가야한다면 정말 미쳐버릴지도 모른다.시작부터 나는 악마와 씨름하느라 걷는 즐거움을 느낄 새도 없었다.
 한 시간 후 명수대를 지나 동작대교가 보이는 곳에 이르러서는 시야가 트이고 갈대밭도 다시 나타났다. 차량 소음도 멀리 들렸다.

 뺨을 스치는 바람결도 느껴졌다.

 이렇게 강변을 걷기는 처음이다. 강변에 나온 사람들 모두 가벼운 차림이다. 그에 반해 두꺼운 파커와 큼직한 배낭을 걸러멘 나는 행려자같아 그들과 이질감을 느꼈다. 그래도 걸었다. 여자들만을 만나면 좀 멀찍이 우회했다. 내 행색에 놀라거나 범죄자처럼 보여질까 싶어서였다.
 동작대교 아래 박스형 회장실이 눈길을 끌었다. 예전 강변에 늘어서 있던 플라스틱 이동식 간이화장실과는 전혀 달랐다. 그냥 지나치려니 궁금해졌다. 되돌아 화장실에 들어가봤다. 문을 열자 음악소리가 들렸다. 역한 냄새도 없다. 세월 좋아졌네... 볼일을 마치고 다시 걸었다. 반포앞에 이르자 미니스톱과 강변카페가 보였다. 불빛이 운치를 더했다. 차를 마시는 연인들도 보였다.
 또 일부러 들러 오뎅국 한사발을 사 먹었다. 그리고 옥수수차와 구운 오징어 하나도 샀다. 물과 간식이 넉넉한데도 무엇인가 사고 싶어져서다. 한남에서 첫번째 휴식을 가졌다. 두시간 조금 더 걸렸다. 당초 예상한 시간이다. 아주 순조로운 행군이다.
 참 희안한 자전거들도 많다. 요즘 자전거는 앉아서 타지만은 않는다. 어떤 건 누워서 타고, 어떤 건 엎드려 탄다.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헐맷들도 워낙 다양하고 폼 나 웬만한 비용으로는 감당도 안 될 듯하다. 자전거를 타려고 나온 건지 자전거패션을 뽐내려 나온건지 모르겠다. 지금 서울에서는 한강르네상스사업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강으로의 접근성을 높이는게 우선이다. 그리고 시민들의 요구에 맞는 다양한 테마를 만들어야 한다. 서울에서 마지막 남은 공간이 한강이다. 이를 얼마나 잘 활용할 것인지, 후손들에게 어떻게 물려줄 것인지 깊이 고민할 대목이다.

 실제로 걸으면서 보행로에 거리 표시나 이정표들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런게 부족하다는 생각 한편에 공무원들이 이걸 만들면서 한번쯤 걸어봤을까 궁금해졌다. 걸어 봤다면 금방 설치하고 싶어졌을 것이다.하여간 공무원들의 관료성이라니...어쩌고 투덜거리다 이내 생각을 중단했다. 서둘러 갈 길이 먼데 그런 생각으로 걷는 즐거움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한남을 지나면서 빗방울도 간혹 떨어졌다. 서둘렀다. 탄천 굴다리 아래서 쉬자. 나는 동호대교 직전부터 뛰기 시작했다. 베낭 무게가 느껴지기는 했지만 의외로 잘 달려졌다. 강물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88도로가 바로 머리 위에 있어 소음과 매연이 심해 빨리 벗어나고 싶기도 했다. 화장실도 없고 쉴 공간도 없다.

 마침내 나는 2시10분경 탄천에 이르렀다. 당초 예상이 3시 도착인 점에 비춰볼 때 오버페이스를 한 것이다. 한남과 탄천 사이의 오버페이스는 도보 내내 나를 괴롭혔다. 그런 점에서 적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과욕은 때로 자신을 망가뜨리기 일쑤다. 탄천은 갈림길이다. 나는 선택해야한다. 잠실을 지나 마사리∼팔당길로 갈 것인지, 성남 방향으로 할 것인지 고민스러웠다. 인생에서도 무수히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지 않던가 ?

 나는 두번째 휴식을 가졌다. 벤치는 없고 송수관로 맨홀이 보였다. 맨홀 뚜껑을 감싼 침엽수 종류의 데크에 걸터 앉았다. 그 위에서 배낭의 무게도 줄일 겸 간식거리를 꺼냈다. 물과 딸기 몇개 먹고는 멈췄다. 입맛이 없었다. 마침내 성남 방향으로 걷기로 했다. 팔당길로는 10여 km 더 우회하게 돼서다. 성남길로 선택하면 70km로 당초 예상보다 줄일 수 있다. 탄천길을 걸을 때 차 소음도 크게 줄었다. 갈대밭도 풍성해서 운치가 났다. 그새 낚시대를 걸러멘 청년들이 한강으로 접근해가는 모습도 보였다.

 탄천에서 막 일어나 걷기를 시작했을 때 누군가 등을 가볍게 밀어주었다. 바람이었다. 새벽 세시가 넘어서면서 바람이 약간 거세졌다. 북풍이 불어 남으로 향하는 나의 걸음을 도와줬다. 이번 여행길에서 가장 고마운 것 중의 하나다.

 3시반경 나는 탄천과 양재천이 합류하는 지점을 돌아서 데크에서 세번째 휴식을 가졌다. 파커를 벗어서 털고 양말도 벗어 발을 말렸다. 그새 대추씨만한 물집이 양쪽에 두개씩 열렸다. 앙징한 느낌이 들었고 훈장 같았다. 잠을 좀 자기로 했다. 오리털 파커가 침낭처럼 두꺼워 잠을 자기에는 무리가 없다. 30분 정도 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는 몽롱했다. 성남 방향으로 계속 나아갔다. 꿈결같이 아득했다. 그리고 어디로 걷는건지 가끔씩 의문이 밀려왔다. 수서와 맞은 편 가락시장, 멀리 보이는 가든 파이브... 모든게 명확한데도 꼭 딴 곳으로 걷는 듯 했다.

 간혹 고양이며 처음 보는 듯한 짐승이 마주 오다가 갈대밭으로 사라지곤 했다. 어떤 것은 위협을 느껴 배낭에 가로 질러놨던 우산을 꺼내 들기도 했다. 악마들은 더 많아졌다. 선택과 의문, 두려움, 위협, 포기하고 싶은 마음 등 수많은 유혹이 괴롭혔다. 다리가 점차 무거워졌다. 통증도 밀려왔다.발가락도 쓰라렸다. 수서와 복정까지는 3km도 안 되는데 걸음이 더뎌졌다. 복정을 닿았을 때는 다섯시무렵 또 선택해야한다. 남한산성길을 넘을 건지 태평에서 목현고개를 넘어 광주를 관통할 것인지를 잠시 고민이 밀려왔다. 이번에도 가까운 길을 잡기로 했다.
   
 복정 굴다리를 지나면서 나는 흠칫 놀랐다. 분명 있어야할 가로등이 사라진 것이다. 길을 구분하기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를 등불이 구분해줬다. 중심과 변방의 차이인가. 도로도 자전거길과 보행로의 구분이 없다. 벤취나 회장실도 없다.

 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강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노래 몇 곡을 부르고서 시간을 보려고 핸드폰을 꺼내자 친구인 김태형의 전화가 와 있다.
 저 너머 아득한 곳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그도 이번 도보여행을 진심으로 응원해준 사람이다. 나는 지겹고 짜증나는 대목만 골라 이번 도보가 얼마나 힘든지 투덜거렸다. 그는 차분히 다 들어줬다. 그와 나는 이십년이 넘은 친구지만 주로 내가 말하고, 그는 듣는 편이다. 그의 우정은 언제나 한결 같다. 늘 나를 지켜보며 응원한다.

 성남 태평역. 힘들면 하루를 쉬고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 곳 중의 하나다. 오전 여섯시반경 태평역앞 사우나실에서 잠시 자고 가기로 했다. 간단히 씻고 누웠다. 발바닥 더 쓰려왔다. 잠시 잠 들었나 싶더니 이내 깼다. 곧바로 나와 근처 해장국집에서 콩나물 국을 시켰다. 아뿔싸 ! 소태처럼 쓰다. 세상에 이처럼 맛 없는 음식도 있나 ? 억지로 먹었다.
 사우나실을 나왔을 때 여러통의 응원 문자들이 날아들었다. 회사의 여러 선후배들과 성남을 관통하는 길에서 대화를 나눴다. 약간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얘기를 주로 했던 것 같다.

 8시경 태평을 출발했다.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성남을 가로질러 목현고개를 넘어 광주로 들어가 점심을 먹을 작정이다.

 상대원에서 광주에 이르는 10여km에 대해서는 실로 말하고 싶지 않다. 사라지다시피한 인도를 따라 걷는 것은 가히 목숨을 거는 일이다. 먼지와 소음으로 목이 따갑기까지 할 정도다. 인도가 없기는 여기만이 아니다. 3번국도를 우회해 곤지암천으로 이어진 길, 곤지암에서 잣나무골까지의 길도 인도가 아예 없다시피하다.
 왜 그런가 ? 이렇게까지 걷는 사람들을 도로에서 밀어낼 필요가 있는가 ? 그건 경제성 때문이다. 도로를 건설하는 쪽에서 볼 때 행려자의 죽음 처리비용이 인도를 건설하는 비용보다 훨씬 낮아서다. 그러한 사례는 다리를 건설하는데도 적용된다. 몇몇 사람이 죽는다해도 비용적인 면에서 유리하다면 우리 사회는 그걸 선택할 것이 분명하다. 이런 사례는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오후 한시경 광주에서 손두부와 청국장으로 점심을 먹었다. 비로소 꿀맛 같았다. 밥도 한그릇 더 먹었다. 포만감과 더불어 나른함이 밀려들었다.
 무갑산 방향으로 우회하려다 3번국도를 관통하기로 했다. 이번 선택도 짧은 길이 우선이다. 3번국도변은 의외로 인도가 잘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오후 햇살이 다시 비춰지면서 땀내가 폴폴거렸다. 3번국도 도평리에서 곤지암천으로 우회했다.
 3번국도변을 따라 걸으려니 차량 소음과 먼지로 도저히 걷기가 불가능해서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임을 곧 깨달았다. 인도가 끊긴 것이다. 죽음의 길이다. 비좁은 갓길은 한사람이 지나기도 어렵고, 웅덩이나 풀로 덮여 있는 경우도 많았다.간혹 가로수가 가로 막아 차도로 올라서면 차들은 경적을 울리기도 하고, 라이트를 켜대기도 했다.
 도처에 폭력과 살의가 깔려 있다.오후 다섯시 무렵 해가 진다. 그 때 만난 초월 성동리 LG 25시 주인을 잊을 수 없다. 용수리 굴다리를 지나서 나타난 수퍼앞 파라솔은 구세주 같았다. 지금까지 뒤뚱거리며 쓰린 발을 끌면서 이동해오는 동안 변변한 벤취도 없었다. 살의가 가득찬 차량들의 신경질적인 반응속에서도 유일한 낙은 간혹 걸려오는 선후배들의 전화였다.

 나는 캔 커피 하나로 목을 축이며 양말을 벗고 발을 살폈다. 그새 대추씨만하던 물집이 땅콩만해졌다. 나는 망설였다. 떠트려 물을 빼낼까.떠트리고 나면 더 쓰리지 않을까. 그냥 걸으려는데 가게주인이 옷핀과 밴드를 가져다 준다.
 "왜 물집 들었나 ? 어디까지 가나 ?"
 여의도에서 밤새 걸어온 나를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그러면서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얼마간 휴식하고 다시 걸으려는데 웬걸 더 쓰라렸다. 삼십여분 갇다가 수퍼에 들러 소주 한병을 샀다. 주정뱅이처럼 병나발을 불면서 걸었다. 군대시절이 생각났다. 85년 2월 설 직후 실시한 사단올빼미 훈련은 잊을 수 없다. 훈련 중간부터 태백산 줄기를 따라 이동하던 중 겨울 장마를 만났었다.
 젖은 장비를 멘 채 걷고 자기를 삼일째 밤 우리 부대는 안강을 지나 형산강 둑을 걸어 귀환하던 중 나는 몇차례 퍼지곤 했다. 그 때 나의 선임은 수통을 건넸다. 소주였다. 나는 그가 그런 준비를 어디서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동안 모두 정신이 나가 그런 걸 챙길 겨를이 없을 정도였으니 ...소주는 설탕물보다 달았다. 몸에 열기가 확 끼쳤다. 그는 나무 개비를 몇개 잘라 어깨 밑 멜빵이 파고 드는 곳에 대 줬다. 한결 수월했다. 얼굴로 흐르는 빗물에 목을 적시며 걸었다. 조금씩 뒤처지자 그는 내손을 잡아 자신의 판초우 자락 한끝에 쥐어줬다. 그리고 다시 소주를 마시라고 건넸다.

 "너 이거 놓으면 죽을 줄 알아...정신 똑바로 차려..죽는 건 개값도 안돼.."
 그가 윽박지르는 말이 웬지 포근했다. 나는 그렇게 무사히 그에 이끌려 귀환했는데 그 때의 행군을 두고 주임상사도 군대생활 30년동안 월남전에서도 경험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것이었다고 했었다.

 그 때 먹던 소주를 나는 다시 마셨다. 지금 이 길위에서 옛 군대 선배도 나의 응원군인 셈이다. 지금은 무엇을 하려나.갈수록 발걸음이 더뎌갔다. 마침내 곤지암 신대리에 이르러서 나는 또 퍼졌다. 신대리 표지석 아래 보도블럭에서 널부러졌다. 그렇게 나는 잠들었다. 깨어났을 때는 관광버스에서 사람들이 어수선하게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탄천변에서처럼 또 30분쯤을 잤을거다. 다시 일곱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남은 거리 7km. 나는 그 길을 사투를 벌이듯이 두시간 넘도록 걸었다. 오후 9시30분 나는 스물두시간에 걸친 행군을 마쳤다.

 무사히 잣나무골에 다다랐을 때 눈물이 났다. 다시 또 이 길을 걸을 건가도 생각했다. 나는 혼자 걸은 것이 아니었다. 벗들과 동료들. 성금을 내거나 문자 혹은 전화, 신발, 음료수 등 그들은 그들의 표현 방식대로 다양하게 응원을 해줬고 나와 동행해줬다.생각해보면 길은 인생과 닮았다. 어느 누구도 대신 걸음을 옮겨주지 않는다. 응원하고 지지할 지언정 내 아버지도 나를 대신할 수는 없다.
 그곳에서 겪는 시간과 경험은 온전히 내 몫일 수밖에 없다. 나의 벗들.고맙다. 겨울날 나는 벗들이 있어 행복하다. 그 이름을 일일이 남기지는 않겠다. 벗들이 내게 준 성금은 회사에서 진행하는 '밥퍼 행사'에 기탁하고자 한다.

 나는 앞으로 또 걸을 생각이다. 방법은 달라질 것 같다. 반포대교 북단에서 출발해 성남 태평까지 30km를 도보로 이동한 다음 야간 심야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방식이 가장 합당할 것 같다. 지방도나 국도는 그야말로 살의가 가득한데다 먼저와 매연, 소음을 감당하며 걷다가는 건강만 해칠 것이다. 차라리 강변을 걷는 것으로 한정하더라도 자주 걸을 생각이다. 나의 벗들. 모두 행복하기를 바란다.

  
 <10일..장정 하루전> 

 이제 준비가 끝났다. 내일밤이면 나는 한강을 따라 성남, 남한산성을 넘게 될 것이다. 나는 이번 퇴근 길을 '2백리 장정'이라고 명명했다. 그새 회사의 동료들이 많이 후원해줬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이다. 부서 혹은 개인 차원에서 관심을 보여줬다. 어떤 후배는 "약속만 없으면 함께 걸어서 잣나무골까지 가보고 싶다"며 응원했다. 어떤 후배는 떠나는 시간에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겠다고도 했다.

 깊게 새겨볼만한 의견도 있었다. 지속적으로 걸어서 마일리지를 한 다음 기부 등을 펼쳐보는 것도 좋겠다는 의견였다. 그러면 운동으로 성장시킬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아주 훌륭한 생각이다. 그런 편에서 이번 퇴근길 기부 마일리지는 매우 성공적인 셈이다. 단순히 개인적 선택에 그칠 뻔한 일을 여러 사람의 의견과 성원으로 좀더 높은 차원의 의미를 갖게 됐다.

 게다가 많은 지지와 성원을 받았으며 운동으로의 가능성도 엿보였다. 마일리지 과정에서 선후배들과 아주 색다른 소통도 하게 됐다. 이러한 성과에 대해 내 삶에 대한 지지로, 편안한 심정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편지를 보내 후원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았다. 호들갑스러워서도 그렇고, 머쓱해서도 그랬다. 그러나 모두에게 말하고 나서는 그저 일상적인 이벤트인 것처럼 가벼웠다. 그것이 아마도 소통의 힘일거다. 앞으로 지속적인 걷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이뤄가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깊이 고민할 대목이다. 무엇인가를 나누면 커지는 법이다. 이번 일도 그런 걸 여실히 증명해준다.

 하루종일 겨울 비가 내렸다. 비 그치면 더 추워질거다. 두툼한 방한복 상하를 준비해뒀으니 걷는데는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겠다.다만 걷는 일만 남았다. 시작은 지극히 사사로운데도 여러 사람들과 나누다 보니 일이 커진 것이다. 분명히 약속을 지켜야할 처지다. 가다가 힘들면 중도에서 차를 탈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이번 퇴근길동안 어떤 화두를 가질 것인지도 고민 거리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 ? 아니면 지나온 과거 ? 내 인생과 가족들 ?

 퇴근 후 아내는 내게 중단하는 것이 좋겠다고 여러번 충고했다. 사고 위험, 무리함 등이 이유다. 나는 여러 차례 안전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간신히 타협했다. 그래도 여전히 불안한 기색이다. 저녁 아홉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11일..장정 직전>

 드디어 퇴근할 시간이 다가온다. 막 퇴근하려던 후배들이 성금을 건네주며 '화이팅'을 해줬다. 나도 화답했다. 정말 가다가 중단하면 아주 망신당할 처지다. 그 전에는 나의 절친 한분이 운동화 한켤레를 보내왔다. 화제삼아 한 얘기를 곧이듣고는 기어이 워킹화를 선물했다. 당초에는 상당한 금액의 성금도 내겠다고 하는 걸 간신히 만류했다.

 절친은 내 의견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신발로 성원했다.그도 이번 장정의 동행인이다. 떠나기 전 신문사 살림꾼이자 서무인 영숙은 누룽지 두 컵을 주며 응원했다. 수많은 동행인들이 내 주변에 있다. 그들의 응원을 담고 나는 걸어야한다. 63빌딩 옆 한강변에서 출발하면 나는 군대 시절 행군 이후로 가장 먼 길을 걷게 된다.
 어릴적 나는 초등학교 십오리, 중학교 이십리를 9년동안 걸어 다녔다. 걷는데 익숙한 편이다. 지금은 차에 의존해 퇴화된 다리와 박제된 사고를 갖고 있다. 이번 장정을 하고 나면 나의 다리는 기능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그런 기대가 있다.
 월든의 작가 데이빗 소로우는 어느날 도보 여행중에 철도 노동자들을 만났다. 구슬땀을 흘리며 힘겹게 일하는 이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당신들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힘들여 일하는 가?"
 철도노동자들이 답했다.
 "노년에 여행을 다니며 안락하게 여생을 즐기기 위해서요."
 그들은 기찻길을 놓고 있지만 언제 그 길 위를 여행할 지는 모른다. 그 기약없는 희망에 대해 소루우가 말했다.
 "당신은 지금 당장 곡괭이를 놓고 바로 걸어가라. 왜 지금 할 일을 늙어서 하겠다는 건가 ?"
 철도노동자와 소로우는 상반된 인생관을 가지고 있다.나는 소로우의 편이다.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지금 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나는 늘 친구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
 "늙으면 전원에 나와 살아야겠다."고. 의문이다. 늙어서 할 일을 지금 하는 것은 왜 안 되는거지 ?
 내가 내 세계에만 갇혀 있는 건가 ? 그런 점에서 나만큼 소통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없다.
 이백리 장정...어두운 강변길...나의 동료들. 머쓱한 이벤트는 이렇게 풍성해지고 있다.
 지금 나는 내게 나직이 말한다.
 "잘 걸어라. 그리고 절대로 멈추지 마라."

<논어>에서 증자가 "죽은 뒤에야 그만 두는 것이니 또한 갈 길이 멀지 않은가 ?"라고 말한 구절이 생각난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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