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신문 고경석 기자]영화계에 '귀농현상'이 눈에 띄게 확산되고 있다. 농촌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하는 것. 세련미와 웰메이드에 집착하던 한국영화가 '도시영화'에 조금씩 '시골영화'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 '워낭소리'-'아부지', 농촌과 소 그리고 아버지

독립 다큐멘터리 '워낭소리'는 2009년 한국 영화계에 가장 놀라운 '사건'을 만들어냈다. 상업영화도 쉽게 도달하기 힘든 성적인 전국 292만 관객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낸 것이다.

영화 '집으로'와 '살인의 추억'이 장르 영화로서 픽션의 공간인 시골을 잘 그려냈다면 '워낭소리'는 논픽션의 공간으로서 시골이 지닌 의미를 전달하며 수백만의 관객을 감동시켰다.

코미디, 스릴러, 액션, 호러 등 진부한 '도시' 장르영화에 지친 관객들에게 '워낭소리'는 담담한 삶의 일상과 사람과 가축의 끈끈한 정, 부모에 대한 죄송함, 시골에 대한 향수 등으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오는 15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아부지’는 '워낭소리'를 연상케 하는 포스터로 눈길을 끈다. 1970년대 아들을 진학시키기 위해 아끼던 소를 파는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을 어린 소년의 눈으로 그렸다.

만듦새는 다소 투박하고 촌스럽지만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중장년층 관객에게는 공감을 살 만한 요소들이 많은 영화다.

◆ '마더'-'거북이 달린다'-'차우', 농촌 스릴러 3총사

봉준호 감독은 시골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그리는 데 있어서 탁월한 재능을 보여왔다. 봉 감독이 그리는 시골은 적막한 공포와 음산한 광기가 혼재하는 미스터리의 공간이다.

'마더'는 원초적 광기의 모성을 지닌 엄마를 시골의 음산한 광기와 접목시키며 초현실적인 이미지마저 만들어낸다. 엄마가 들판에서 춤을 추는 도입부는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이미지다.


자연이 주는 평화와 불안이 공존하는 시골의 공간은 괴수영화 '차우'로 이어진다. 10년째 범죄 없는 평화로운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괴수와 마을 주민들간의 사투를 그린 이 영화는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추격자'의 농촌판으로 불리는 '거북이 달린다'는 신출귀몰 무술 100단의 탈주범을 만난 한심한 시골 형사의 성공 드라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형사와 범인이 쫓고 쫓기는 과정에서 농촌과 어촌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잘 활용했다는 점이다.

순박한 인물들의 묘사도 '거북이 달린다'만의 재미다. 나른한 경찰들의 일상과 극중 김윤석이 맡은 주인공의 시골 친구와 패거리들이 펼치는 활약상은 '시골영화'로서 이 영화의 장점을 더욱 부각시킨다.

◆ '킹콩을 들다', '우생순'의 순박한 시골 소녀 버전

이범수 조안 주연의 '킹콩을 들다'는 전직 역도 국가대표 선수와 역도선수를 꿈꾸는 시골 소녀들이 펼치는 성공담을 그린 전형적인 스포츠 드라마다. 핸드볼 국가대표 선수들의 실화를 소재로 했던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농촌 소녀 버전인 셈.

상투적인 전개와 일부분 인공적인 장치들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4일 현재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 이례적으로 9점대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 같은 블록버스터도 받기 힘든 점수다.


일부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관객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시골영화' 특유의 순수하고 따뜻하며 인간적인 정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안을 비롯해 풋풋한 신인배우들이 연기하는 시골 소녀들은 '농촌영화'가 추구하는 순수 혹은 순박의 정의와 맞닿아 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한 시골 소녀가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전직 역도선수와 펼치는 인간승리도 감동적이지만 영화 전편에 흐르는 따뜻한 측은지심은 이 영화를 더욱 사랑스럽게 만드는 지점이다. '킹콩을 들다'가 농촌으로 갈 수밖에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 있다.

고경석 기자 kav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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