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맥]이야기의 경쟁에 갇힌 정책, '누가 얻는가'를 다시 묻다
"정치는 현실이다, 국민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이념·가치, 뭐가 중요한가."
이재명 대통령(지난 3월30일 제주 타운홀미팅)의 발언처럼, 정책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국민의 삶에 직접 닿는 실체여야 한다. 본래 정책은 가치 충돌을 내포한 정치의 산물이지만, 최근 우리 사회의 혼란은 단순한 가치 경합을 넘어선다. 정책학자 데보라 스톤은 정책을 이야기의 경쟁이라 했으나, 그 이야기가 객관적 진실이 아닌 이념과 인기 영합적 프레임에 갇힐 때 정책은 공공의 이익이 아닌 정치적 선동에 따라 흔들릴 위험이 커진다.
탈원전 정책은 이러한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정부는 안전이라는 가치에 방점을 두었지만, 그 과정에서 수십 년간 축적된 원전 생태계의 붕괴와 전력 공급 불안정, 산업계의 막대한 비용 부담이라는 현실적 문제들이 충분히 고려됐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에너지안보와 탄소 중립이라는 측면의 실증적 근거가 안전에 대한 인식과 어떻게 균형을 이루었는지도 평가가 엇갈린다. 이후 정책 방향을 되돌리는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은 커졌고, 그 부담은 결국 국민과 기업에 전가됐다. 이는 가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이념적 판단이 과학적 사실을 압도할 때 발생하는 정책 혼선의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규제 정책에서도 반복된다. 대형마트 영업 규제는 골목상권 보호와 상생이라는 명분 아래 추진됐으나, 실제 효과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존재한다. 규제의 반사이익은 전통시장이 아니라 거대 온라인 플랫폼으로 이동했다는 결과도 제시된다. 동시에 맞벌이 부부와 1인 가구의 선택권은 오히려 축소됐다는 지적도 있다. 정책이 현장의 변화된 소비패턴과 유통 환경에 대한 충분한 분석보다 대형마트 대 소상공인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에 집착했을 때, 정책의 실효성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
두 사례는 누가 실제로 이익을 얻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비껴갔다는 점에서 닮았다. 정치학자 해럴드 라스웰이 지적했듯이, 정책 결정의 핵심은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얻는가'에 있다. 정책은 다양한 가치를 고려해야 하지만, 그 출발점은 궁극적으로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그 부담을 지는지에 대해 명확히 따지는 데 있어야 한다. 지금 한국의 정책은 이러한 기본원칙이 흐려지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효율성과 형평성, 자유와 안전 등의 충돌은 민주주의 사회의 숙명일 수 있으나, 그 딜레마를 책임 있게 조정하는 것이 정치의 책무다.
정책에 모순이 존재하는 것은 현실이나, 이를 당연시하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 이는 이념 뒤로 숨으려는 책임 회피의 논리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책의 성패는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전기요금과 장보기처럼 국민의 일상에 닿는 실질적인 결과로 증명돼야 한다. 불편한 수치를 직시하고 실패를 책임지는 자세야말로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출발점이다. 정책의 진정한 힘은 모순을 미화하는 데 있지 않다. 그 결과가 국민의 삶에 미치는 무게를 끝까지 감당하려는 책임과 의지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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