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현대자동차가 아토스 이후 19년 만에 선보인 경차 '캐스퍼'. 운전면허도 없던 아내가 어느 날 운전을 배우고 싶게 만드는 차라고 평했다. 경차는 다 비슷비슷하다는 생각에 기억에서 잊혔던 그 차는 어느새 도로에서 쉽게 눈에 띄는 인기 차종이 됐다. 저렴한 가격과 톡톡 튀는 디자인으로 '경차 불모지'인 우리나라에 안착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에 전기차 모델을 선보이면서 올해도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캐스퍼 일렉트릭은 국내에서 3215대가 팔렸다. '아이오닉 5'(4125대)에 이어 현대차 전기차 판매량 2위에 올랐다. 현대차 전체 전기차 판매량의 18%를 홀로 견인했을 정도다.
경기 침체로 국내 신차 수요가 위축된 상황을 생각하면 놀라운 성적이라는 평가다. 높은 인기 덕에 일부 모델은 지금 계약해도 출고까지 최대 22개월이나 기다려야 할 지경이다. 중고차 시장에서도 캐스퍼는 '핫 아이템'으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중고차를 매입하고 판매까지 한 달 남짓 걸리는데, 캐스퍼는 평균 판매일이 16일에 불과할 정도다. 시장에 나오기가 무섭게 팔린다고 한다.
해외에서도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캐스퍼 일렉트릭 1분기 수출 물량은 1만1836대로, 지난해 4분기(8646대)와 비교해 무려 37%나 늘어났다. 또 지난달 미국 뉴욕 국제 오토쇼에서 열린 '2025 월드카 어워즈'에서는 포르쉐 마칸 일렉트릭 등 프리미엄 모델을 제치고 '세계 올해의 전기차'에 선정되기도 했다.
국내외에서 캐스퍼가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지만 정작 캐스퍼를 생산하는 광주글로벌모터스(GGM)에는 먹구름이 가시지 않고 있다. 지난해부터 촉발된 노사 갈등이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10월 노조는 사측과 벌인 임금 및 단체협약에서 월 급여 7% 인상, 호봉제 도입, 상여금 300%, 자유로운 노조 활동 보장 등을 요구했으나 사측이 이를 거부하면서 투쟁에 돌입했다. 이에 전문가로 구성된 광주 노사민정 조정중재특별위원회가 3개월의 고심 끝에 중재안까지 내놨지만 이마저도 거부하고 최근 상경 투쟁과 추가 파업까지 예고한 상태다. 특히 노조는 중재안이 '누적 생산 35만대 달성 때까지 파업을 유보해야 한다'는 내용이 헌법상 기본권을 제한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헌법상 합당한 문제 제기를 하더라도 스스로 자신들의 출발점을 무효로 만든 것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광주형 일자리 1호로 탄생한 이 공장은 애초 적정 임금과 무노조 경영을 담은 '노사 상생발전 협정서'에 기반한 사회적 합의로 2019년 설립됐다. 노조가 스스로 6년 만에 합의를 무너뜨리고 신뢰마저 훼손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의 제조업은 중국과 같은 후발주자에 밀리면서 대전환이라는 과제를 앞두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미국 통상 압박 등 대내외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노사 갈등으로 인해 당초 목표한 35만대 달성에 차질을 빚는다면 단순한 손익을 넘어 회사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광주글로벌모터스는 캐스퍼 하나로 글로벌 무대에 발을 내디뎠고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제조업 재건의 상징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원칙이 무너진다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단기 이익을 좇은 과도한 요구와 정치화된 투쟁이 지역 산업 생태계 전반을 위기로 내몰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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