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 '신사업 열망' 강해
SK실트론 매각 추진 '과감한 행보'
다운스트림 중심 반도체에 집중
적자 지속 비핵심 소재, 매각 대상
SK그룹이 SK실트론 매각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룹 안팎에선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오는 10월 구미 신공장 가동을 앞둔 데다가 실적 변곡점이 머지않았다는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다. 실적 호조 전망에도 매각 작업에 착수한 건 인공지능(AI)을 필두로 하는 최태원 그룹 회장의 '신사업에 대한 열망'이 담긴 결정이라는 게 안팎의 중론이다. 그룹 내부에선 반도체 수직계열화 전략의 한 축을 깨뜨리는 전향적 결정은 선택과 집중에 대한 경영진의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SK그룹의 리밸런싱(사업재편) 작업은 더욱 광범위하고 강력해지는 분위기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으로 자산 100조원 규모의 거대 에너지 기업을 출범한 데 이어 반도체 핵심 소재인 웨이퍼 메이커까지 내다 팔 정도로 파격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반도체 웨이퍼 제조사인 SK실트론의 가치는 5조원대로, 일부 품목은 세계 3위에 오를 정도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기업이다.
유동성 확보에 총력…효율화에 집중
SK그룹이 과감한 재편을 지속하는 것은 최적화와 효율화를 중심으로 성장 노선을 선회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SK실트론의 경우 웨이퍼 조달이 수월한 시장 환경, 자체 경쟁력 한계 등이 매각 배경으로 꼽힌다. 회사 관계자는 "과거 사파이어, 솔라 등 사업 확장 시도도 있었지만 연이어 실패했고 웨이퍼 제품은 '더미 웨이퍼'로 사용되는 등 전략적 중요도가 떨어졌다는 평가가 있다"고 말했다.
자본시장 전문가는 "SK가 실트론을 인수했을 당시엔 반도체 수직계열화를 강화하려는 전략적 판단이 있었지만, 이후 실적 부진과 원가경쟁력에서 한계가 드러났다"며 "범용 웨이퍼는 시장 내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실트론 보유는 오히려 고정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SK가 다운스트림 중심의 반도체 전략에 집중하며 실트론을 정리하는 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적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SK실트론 매각은 SK가 지난 1년여간 추진해온 리밸런싱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수익성 중심의 포트폴리오 정비와 자금 확보를 동시에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SK는 지난해 자산 매각과 여러 금융 수단을 통해 18조원에 이르는 유동성을 확보했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매각 수입 3조1238억원, 중단 영업 매출 2조924억원 등 총 약 6조원 등이 포함된다. 나머지 12조원은 상환전환우선주(RCPS), 전환우선주(CPS), 신종자본증권, 총수익스와프(TRS) 계약 등 다양한 금융 수단을 활용해 조달했다.
조직 구조 개편도 병행됐다. 리밸런싱 전인 2023년까지 종속회사를 716개까지 늘렸다가 2024년 말 기준 649개로 줄였으며, 같은 기간 주요 종속회사는 208개에서 200개로 감소했다. SK는 주요 종속회사 200개 미만을 구조조정 1차 목표로 설정하고, 재무 안정성과 효율화를 동시에 높일 방침이다.
천창민 서울과기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존 사업 중 수익성과 전략적 중요도를 기준으로 핵심과 비핵심을 나누고, 핵심 산업 중심으로 자원을 재배치하는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도 "시장성 높은 계열사를 매각해 재무적 실탄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라고 했다.
'성역 없는 매각'…SKC 등도 후보
SK는 과거 최종현 선대회장이 천명한 '석유부터 섬유까지' 수직계열화를 이룬 소재·화학 부문도 매각 대상으로 분류하며, '성역 없는 리밸런싱'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 C와 그 자회사 SK넥실리스, 분리막 제조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는 이차전지 소재 사업군이지만, 실적 악화와 전략적 우선순위에서 밀려 매각 가능성이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SKC는 지난해 1년간 쌓인 적자 규모만 2768억원을 기록했다. SKIET 역시 지난해 2909억원대 영업손실을 냈다. 업계 관계자는 "두 계열사는 SK 매각 대상으로 가장 먼저 거론되지만 재무 구조가 매우 안 좋아 매수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같은 배터리 밸류체인에 속한 SK온은 지난해 약 1조3789억원의 영업적자를 냈지만 비교적 다운스트림 쪽에 가까워 매각 대상에서는 제외된 상태다. 자본 시장 전문가는 "핵심 사업이라 해도 수익성이 낮고 투자 대비 효율이 떨어지는 업스트림 자산은 먼저 정리하고, 배터리 셀 같은 다운스트림 경쟁력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려는 전략"이라고 진단했다. 시장에선 이들 외에도 SK네트웍스에서 물적 분할된 저수익 자회사들 글로와이드, 스피드메이트와 비상장 물류기업 한국초저온 등이 매각 리스트에 올랐다고 본다.
상시적인 매각 추진으로 조직과 직원들 사이에 동요와 위축감이 확산하는 건 문제로 지적된다. 최근 나타난 인수합병(M&A) 시장의 밸류에이션 갭 확대도 큰 걸림돌이다. 다수의 자산 매각이 물밑 접촉 단계에서 불발된 것 역시 이 때문으로 알려졌다. 한국초저온은 지난해 중순 매각이 추진됐지만, 가격 문제로 현재 협상이 무산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매수자들은 조금만 더 기다리면 훨씬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매각하는 입장에선 더 낮은 가격에 팔 수 없는 상황이라 매각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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