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안 반대 전에 주주가치 제고 고민해야
대규모 기습 유증 등 주주권익 맨 후순위
최근 재계에 잇따랐던 대규모 유상증자는 시기가 묘했다. 삼성SDI의 2조원 유증 발표(14일)는 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바로 다음 날이었고, 역대 최대 규모(3조6000억원)라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의 유증은 그로부터 엿새 뒤 이사회를 통과했다. 두 회사 모두 각각 적기에 투자를 집행하기 위한 최선의 결정이라는 입장이지만 난데없이 뒤통수를 맞았다며 시장은 여전히 들끓고 있다.
삼성SDI 주주들은 가뜩이나 1년 만에 주가가 60% 이상 폭락한 상황에서 또다시 악재를 맞게 된 데 대해, 한화에어로 주주들은 어닝 서프라이즈로 주가가 3배 이상 오른 상황에서의 기습 유증에 이를 갈았다. 시장이 동요하자 최주선 삼성SDI 대표는 1억9000만원, 김동관 한화에어로 대표는 30억원의 자사주 매입을 결정했다. 이후 한화가 9803억원을 출자해 한화에어로 유증에 100% 참여한다고 발표했지만, 비판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금융 당국의 수장들마저 그 찬반을 둘러싸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는 상법 개정안은 그 포괄성과 모호성 탓에 앞으로 발생할 부작용을 정확하게 짚어내기 어렵다. 상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경영권 방어, 이사회 운영 비용 증가 같은 부담이 늘고 사사건건 소송이 걸려 투자 적기를 놓칠 수 있다는 재계의 주장 역시 일리 있다. 상법(제382조의3)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에 '총주주' 한 단어를 추가한다고 주가가 급등하고 천지가 개벽하는 것도 분명 아닐 테다.
하지만 재계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추측과 전망이며 주주의 권익을 가장 후순위에 둔 기업의 결정은 이렇게 빈번하게 바로 지금 우리 눈앞에 확실하게 존재한다. 경제 규모나 개인 투자자 비중에 비춰 형편없는 국장(國場·국내 증시)의 주주 보호 시스템과 기업 거버넌스는 '기업 성장'에 밀려 맨 뒷줄에서 순서를 기다린 지 오래다.
한화에어로의 상황만 봐도 그렇다. 한화의 출자금을 제외한 나머지 2조6197억원은 결국 시장의 주주들로부터 조달하게 된다. 회사 미래 가치에 투자하고 성장에 기여하는 최대 주체는 일반 주주가 되는 셈이다. 비슷한 시기 계열사인 한화생명과 한화손보, 한화투자증권은 무배당을 결정했다. 한화가 그토록 중시하는 '신용과 의리'의 대상에서 주주는 제외된 것처럼 보인다.
상법 개정안을 두고 '갈라파고스 규제'라는 비유가 있다. 그 논리대로라면 투자자들이 서 있는 국장도 갈라파고스에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말처럼 미국 상장사 80%가 설립된 델라웨어주법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으로 회사뿐 아니라 주주도 명시하고 있다고 한다. 재계가 상법 개정안을 반대할 생각이라면, 그에 앞서 이제까지 등한시 했던 주주의 권익 보호 방안에 대한 답을 먼저 내놔야 할 것이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