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둘 다 패자인 싸움, 의료사고 지켜만 볼 것인가
결국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까지 하면서 의료개혁 추진 의지를 재차 천명했다. 갈등의 핵심인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은 번복하지 않았으니 대화는 더 어려워진 것일 수도 있다. 급기야 전국 의대 교수들은 오늘부터 외래 진료와 수술을 모두 줄이기로 했다. 전공의들이 떠난 자리를 메우느라 피로가 쌓였다고 한다. 이들의 공백이 6주 넘게 이어지며 외래와 당직을 반복해 누적된 결과다. 어느 곳에서는 교수들의 근무시간이 주 90시간을 넘겼다고 하니 이제는 의료공백을 넘어 의료사고까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환자들의 안전을 위한 조치이기도 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인 점은 분명하다. 직원의 과로에 대해 사업주가 처벌받는 일반 업종과 다른 의료계의 현실을 감안하면 병원과 남아있는 의사들을 보호하는 게 우선이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로 야기된 정부와 의사들 사이의 갈등은 이미 해결 가능성이 사라진 듯하다. 애당초 정책 싸움이 아닌 환자의 생명과 국민의 건강을 인질로 한 일부 의사들의 행태로 촉발된 사안이지만 표면상으로나마 남아 있던 정책 논리조차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이 내놓은 의료개혁 추진은 수순을 밟기 힘들어 보인다. 그나마 마지막까지 쥐고 있던 '법치주의 확립' 카드도 내려놓은 듯하다. 최근 의료 현장 미복귀 전공의들에 대한 행정처분을 유예하면서 남은 건 '의대정원 2000명'이라는 숫자뿐이다. 사실 '2000'이라는 숫자도 이제는 무의미해졌다. 다음 정권은 물론 보름 뒤 총선 결과에 따라 새롭게 주도권을 쥘 세력들은 의사들의 강력한 세력화를 구경했으니 다시 건드리고 싶지 않을 게 뻔하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을 이용하고 있는 의료계의 특정 집단들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중재에 나섰지만 이들은 어깃장 놓기를 계속하고 있다.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던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급기야 "이젠 웃음이 나온다. 전공의 처벌 못 할 거라고 하지 않았느냐"라며 정부를 조롱하고 나섰고 정부의 처분 의지를 노름판에서나 쓰는 '뻥카'로 치부했다.
이들의 다음 스텝은 어떠한가. 5월부터가 임기 시작이라는 임현택 차기 대한의사협회장 당선인은 이미 "우리나라는 대통령을 탄핵한 역사가 있지만 대단히 신중해야 한다"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는 막말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의사들이 힘을 합쳐 정치색을 보여주겠다는 계획도 꺼냈다. "의사에게 가장 모욕을 주고 칼을 들이댄 정당에 궤멸 수준의 타격을 줄 수 있는 선거 캠페인을 진행할 것"이라며 "의협 손에 국회 20~30석 당락이 결정될 만한 전략을 가지고 있다"고도 했다.
이 정도면 의협은 이제 세를 동원해 정치 투쟁에 나서겠다는 조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2000명 증원이 잘못됐다면 대안을 적극적으로 내놓고 정부가 제안한 대화의 장에 나서서 논리 싸움을 해야 한다. 정부의 의료개혁 백지화와 함께 보건복지부 장·차관 파면이 의정 대화의 조건이라는 입장은 겁박에 불과하다.
정부 역시 집권여당에 불리하다는 이번 총선의 반전 카드로 막판 입장 선회를 꾀하고 있다면 더 이상의 계산은 멈춰야 한다.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고 해놓고 가장 첨예한 쟁점을 의제에서 배제한 태도에도 유연한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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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는 개원의들까지 주 40시간의 '준법 진료'에 나선다고 한다. 진료 시간을 줄이거나 중단하면 수입이 떨어져 참여율이 높지 않겠지만 국민들의 불안은 확산할 수밖에 없다. 의료 공백으로 인한 중환자들의 사망 사고 책임을 서로에게 미루는 또 다른 갈등의 촉발도 얼마 남지 않았다. 국민들의 신뢰를 잃으며 둘 다 패자로 기록될 게 뻔한 싸움에서 더 이상 국민들의 분노를 키울 필요는 없다. 배경환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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