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다운 / 대니 돌링 지음 / 김필규 옮김 / 지식의날개 / 2만9000원

[남산 딸깍발이] 대가속 시대에서 외치는 '감속'…"이젠 고개를 돌려야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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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민우 기자] "대가속시대의 끝이 왔다. 감소가 아닌 ‘감속’이 시작되는 시대에서 우리는 정상을 되찾을 수 있다."

‘슬로다운’의 저자 대니 돌링 영국 옥스퍼드대 지리학과 교수는 이처럼 완전경쟁 속 기업, 사회, 국가의 ‘혁신 랠리’에 종언을 고했다. 저자가 강조하는 ‘슬로다운’은 감소가 아니라 ‘감속’을 뜻한다. 더 이상 무서울 정도로 빠른 변화는 나타나지 않고 그 속도가 이제 점차 줄어든다는 의미다.


대가속의 시대에서 감속의 시대로

지난 160년간 지구 인구는 두 배의 두 배, 거기서 또 한 번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전 세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실질 가치로 따져도 10배 이상 증가했다. 말을 타던 인류는 우주여행을 시작했다. 갈수록 빨라지는 속도에서 안간힘을 쓰는 것은 필수였다.

하지만 이제 이 같은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여전히 앞으로는 나아가고 있지만, 그 속도는 예전만 못하다. 인구, 경제, 기술, 사상도 모두 발전 속도를 서서히 줄이고 있다. 대단한 혁신으로 여겨진 스마트폰도 전화와 컴퓨터, 인터넷의 첫 등장에 비하면 작은 충격이라는 설명이다.

저자는 방대한 수치와 도표를 근거로 시대의 감속을 주장한다. 이와 함께 변화의 속도와 관련해 터무니없는 일반화가 반복해서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소위 ‘데이터의 홍수’는 대표적인 사례다. 어느 때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만들고 있으고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이 측정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쌓이고 있다는 통설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이 같은 주장의 근거가 희박하며, 오히려 데이터 생산량이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를 더 찾기 쉽다고 강조한다. 그는 "매달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이 각자 80억자에 해당하는 글을, 데이터를 만들어내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데이터는 인류 지식의 진보에 별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대부분 쓸모없거나 중복되는, 상당수는 이미 여러 장소에서 여러 번 제작된 복제품이다"라고 지적했다.


그 근거로 위키피디아를 제시했다. 처음에는 방대한 정보들이 범주화되면서 등재됐지만 이제는 매년 증가하는 접속자수나 신규 접속자수가 늘어나는 속도가 줄고 있다는 것이다. 2001년 1월15일 개설 이후 19년만에 위키피디아 문서는 1만9700건에서 577만3600건으로 늘었다. 첫 한달 만에 1000건의 문서가 추가됐고 6개월 만에 1만건이 등록됐다. 2년 뒤에는 10만건을, 5년 뒤에는 100만건을 넘어섰다. 10배로 늘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점차 줄어든 것이다. 돌링 교수는 "최근 인터넷에서 접속할 수 있는 정보의 증가 속도가 느려지면서 콘텐츠 증가량도 매년 10%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폭발적으로 증가한 초창기는 이제 막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인구, 탄소배출량, GDP, 주택 가격, 주식 시장 등 다양한 분야의 ‘슬로다운’을 조명한다. 대부분의 분야가 시간이 흐를 수록 우상향 곡선이 나타났지만 증가 속도는 확실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수치 간의 비교만으로 끝내지 않는다. 그 안에 담긴 함의도 조명한다. 예를 들어 인구 증가와 탄소배출량 사이의 양의 상관관계를 확인했지만 이를 단순화하지 않는다. 국가별 산업과 소득 수준을 분석해 소수의 나라에서 소수의 특정한 상품을 소비하는 데 공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는 식이다.


성장의 둔화는 곧 ‘안정’

저자는 성장의 둔화를 비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안정’에 가까워졌다고 낙관한다. 대가속 시대가 인류에게 큰 발전을 선사했지만 동시에 커다란 고난도 안겨줬다. 이제는 자본주의의 기세를 꺾고 불평등과 전쟁, 갈등을 줄일 수 있는 안정적인 체계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슬로다운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돌링 교수는 "대가속 시대 이전처럼 우리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속도 안에서 조금만 일하고 가족과 친구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며 "단번에 바뀌지는 힘들며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도 있고 상당한 저항이 있을 수 있지만 결국 세상은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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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저자의 시선은 다소 모호하고 순진한 측면도 있다. 돌링 교수의 표현대로 인류의 발전이 진자운동처럼 증감을 반복하며 나아갔다면, 현 상황 역시 진자운동 중 잠시 바닥에 처한 것일 수도 있다. 증가 곡선의 2차도함수, ‘감속’이라는 변곡점이 나타나는 명백한 근거는 찾기 힘들수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전환점을 맞은 상황에선 분명 다시 곱씹어 볼 만한 문제의식이다.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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