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정일 부국장 겸 4차산업부장]
화살을 쏠 때 백발백중의 비법이 있다. 일단 화살을 쏜다. 그리고 화살 주위로 표적을 그린다. 백발백중이다. '옛날 옛적에 신궁이 있었는데…'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알고 보니 신궁이 아니더라'로 맥없이 끝난다. 아닌 게 아니라 화살(원인)과 백발백중(결과) 사이의 맥락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 뇌는 쉽게 속는다. 인과관계가 의외로 허술한 탓이다. 여기에 공포가 끼어들면 더더욱.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논란이 그렇다. '백신'이라는 화살에 '사망'이라는 과녁을 그린 꼴이다. 늘 그렇듯 시작은 자극적이었다. '17세 소년이 백신을 맞고 사망했다.'(10월19일 언론 첫 보도) 이 사건의 단편적 팩트는 이랬다. '14일 낮 12시쯤 독감 백신 무료 접종. 접종 전후 특별한 증상 없어. 16일 오전 사망. 사인 조사 중'. 문제는 이 팩트가 '백신을 맞고 사망했다'는 한 줄로 요약되면서다. 상황은 갑자기 위험한 결론으로 치달았다. '백신이 사람을 죽였다.'
이때부터다. '백신 사망'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꼬리를 물었다. '엿새간 10명 사망 독감백신 쇼크'(10월22일), '전국서 사망자 34명까지 늘어'(23일),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 48명'(24일), '사망 신고 누적 83명'(31일). 그렇지 않아도 '상온 노출'이라는 유통 사고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던 백신이다. 여기에 사망 사건까지 겹치면서 국민의 불안감은 증폭됐다.
전혀 다른 방향의 팩트도 있다. 부검 결과 백신과 사망에는 인과관계가 없다는 정부 발표다. "사망과 예방 접종의 인과성은 매우 낮아 백신 예방 접종 사업 중단을 고려할 상황이 아니다."(정은경 질본관리청장) 정재훈 가천대 의대교수(예방의학교실)도 대한의학회지에 기고한 글에서 거들었다. "국내 사망자는 매년 30만명에 이르고 겨울에는 사망자가 증가해 10월이면 매일 1000명에 이른다. 국내 독감 백신 접종률이 50%라고 가정하고 이들이 두 달간 맞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매일 국민의 1%가 예방접종을 받는다. 따라서 백신 접종자 10명은 어떤 이유에서든 1일 이내 사망하게 된다." 사망과 백신 접종이 별개의 팩트일 뿐 인과관계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샤워 후 사망'이나 '산책 후 사망'과 같은 통계적 오류에 얼마든지 빠질 수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백신에 대한 불신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왜일까. 의학자들이 곤혹스러워하는 것도 이 대목이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데도 백신 공포가 사라지지 않는 '현상과 해석의 괴리'. 일부 언론의 공포마케팅, 아니면 가짜뉴스 때문?
통계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자 의사인 고(故) 한스 로슬링은 저서 '팩트풀니스'에서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사실을 눈앞에 두고도 사람들은 얼마든지 잘못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우리 뇌의 작동방식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뇌는 수백 년간 진화를 거쳤고 우리 조상이 수렵과 채집을 하며 생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인간의 뇌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속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덕분에 즉각적 위험을 피하기도 한다."(29페이지) 문제는 이런 '공포 본능'이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공포는 위험하지 않는 것에 주목하게 하고 실제로 매우 위험한 것은 외면하도록 한다."(173페이지)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한국 증시 왜 이렇게 뛰나"…코스피 랠리에 이탈...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으로 무지와 싸워온 그에게 우리의 백신 사태는 어떻게 비칠까? "공포와 위험은 엄연히 다르다"는 그의 말에 해답이 있다. 실은 정말로 위험하거나(1) 위험할 수도 있거나(2) 위험하지 않는 상황(3)에서도 공포는 튀어나온다. 1ㆍ2와 달리 3은 소모적이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3에 가깝다. 거듭 말하지만 공포와 위험을 분리하는 것은 과학적 사고다. 화살을 쏘고 과녁을 그려서는 안 된다. 우리가 오랫동안 쌓아온 예방 접종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