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트럼프를 떠나보내는 김정은의 마지막 선물
[아시아경제 뉴욕=백종민 특파원] 지난 10일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대중 앞에 나섰다.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두 사람은 우연의 일치인 듯 같은 날을 택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툭하면 모습을 감추며 그때마다 건강 이상설을 불러왔지만 이번에도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을 통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친서와 전문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건강을 걱정해 오던 김 위원장이지만 이날은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적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불과 며칠 전 트럼프 대통령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쾌유를 바랐던 모습이 아니었다. 김 위원장은 대신 자신을 잊지 말라는 듯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내보였다.
미국 정부는 내심 자제하는 모습이었지만 조야는 발칵 뒤집혔다. 실시간으로 열병식 중계를 시청한 미국 전문가들은 연이어 탄식하며 '사상 최대의 이동형 ICBM이다' '다탄두를 탑재했을 것'이라는 등 분석을 내놓느라 부산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당일 벌어진 백악관 행사뿐 아니라 '폭풍트윗'을 하면서도 북한과 ICBM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ICBM 공개에 대해 화났다고 한 언론인이 트위터에서 언급했지만 미 주류 매체는 물론 해당 기자가 속한 매체도 이런 내용을 보도하지 않은 만큼 신뢰도는 높지 않아 보인다.
김 위원장이 화려하게 돌아왔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코로나19 감염 탓에 백악관 발코니에서 연설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대선은 코앞인데 TV토론은 망쳤고 연이어 코로나19까지 감염되며 체면을 완전히 구겼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언급을 할 여유조차 없어 보였다. 이날 연설의 승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라 김 위원장 쪽으로 기운다.
두 사람이 앞으로 재회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미국 내 최근의 여론조사를 감안하면 영원한 이별을 고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여부가 불투명해진 상황은 두 사람의 관계로 여기서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목전까지 갔던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퇴임 후 억류자 석방을 위해 북한을 방문한 것과 같은 상황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이런 점에서 김 위원장은 이번 ICBM 공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마지막으로 준 선물일 수도 있다. 실제로 이번에 북한이 공개한 ICBM은 속빈 강정일 수 있다는 의견도 많다. 미국 전문가들이 확인한 것은 ICBM을 움직이는 이동발사대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김 위원장은 아직 시험 발사도 해보지 못한 미사일을 공개했다는 것만으로도 미국을 놀라게 할 수 있다는 힘을 과시하면서도 미사일을 쏘지 않겠다는 약속도 지켰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서 이겨 비핵화 협상을 재개해도 김 위원장은 '나는 약속을 지켰다'고 주장할 근거도 마련했다. 북한 입장에서 새 미국 정부가 들어서도 선택지는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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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이 '사랑하는 남녘 동포'라는 언급을 했다지만 결국 협상은 남북이 아니라 북ㆍ미 간의 문제다. 이제는 '전략적 인내'를 내세워 북한 문제 해결을 애써 외면했던 미국 민주당이 북한과의 협상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김위원장이 모를 리 없다. 북ㆍ미 관계 개선을 위해 애써온 우리 정부의 노력도 허무하게 끝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이제 인정할 때다. 인식의 전환이 빨라야 해법을 찾기도 쉬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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