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에서 운영하는 회생절차, 파산절차, 개인회생절차는 재정적 어려움에 처한 개인이나 기업의 빚을 조정해 새로운 출발을 하게 하거나 회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다. 빚을 조정한다는 것은 채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면책(면제)해준다는 것으로 필연적으로 채권자들의 희생이 따른다. 면책의 전제는 채무자가 성실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채무자가 성실한지를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면책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심리 단계에서 불성실이 발견되면 면책을 허가하지 않으면 된다. 면책이 이루어진 후 불성실이 밝혀지면 면책 전의 상태로 돌려놓아야 한다. 현재의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채무자회생법)은 어떤가.
회생절차에 관해 보자. 오래 전 일이다. 한 회사가 회생절차개시신청을 해 별다른 문제없이 회생계획안을 제출해 채권자들로부터 동의를 받아 법원으로부터 인가까지 받았다. 회생계획은 대략 채권액의 40% 정도를 변제하고 나머지는 면제하는 것이었다. 인가가 나자 대표자가 면제되고 남은 채무를 전액 변제할 테니 회생절차를 조기에 종결해 달라는 것이다. 조기변제의 경우 현재가치로 환산해 변제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40%에 훨씬 못미치는 변제가 이루어진다. 당연히 회생절차개시신청 전에 돈을 빼돌린 후 채무 일부를 면제받은 것이라는 강한 의심이 들었다. 당연히 채권자들의 반발이 심했다. 원래대로 변제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법원으로서도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채무자가 부정한 방법으로 법원과 채권자들을 속이고 회생절차를 통해 채무를 면제받은 경우 이를 원래대로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회생절차를 남용해 채무를 면제받은 경우 회생계획을 취소하는 제도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러한 규정이 없다. 결국 현재로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마땅히 대처할 방법이 없다.
개인파산의 경우는 어떤가. 얼마 전 지인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하소연한 내용은 이렇다. 아는 분에게 상당한 금액의 돈을 빌려주었는데, 이 분이 몇 년 전 개인파산신청을 해 면책결정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가진 재산을 숨겨놓고 면책을 받았고, 현재는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니면서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법원으로부터 면책결정을 받으면 채무의 이행을 강제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려해 볼 수 있는 것이 면책취소제도다. 면책취소란 채무자에 대해 사기파산죄에 관한 유죄판결이 확정된 경우나 채무자가 부정한 방법으로 면책을 받은 경우에 면책을 취소하는 것이다. 면책이 취소되면 면책됐던 모든 채권자의 권리가 면책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고 채무자의 책임이 부활한다.
이처럼 면책취소제도는 면책 이후 면책제도를 남용한 자들에 대한 효과적인 대처수단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면책취소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다. 면책취소를 하려면 먼저 사기파산죄에 관한 유죄판결이 확정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사기파산죄로 기소되는 것도 쉽지 않고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는 것도 여의치 않다. 다음으로 부정한 방법으로 면책을 받아야 한다. 부정한 방법이란 기망이나 협박 등의 방법으로 면책을 얻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부정한 방법에 의한 면책취소신청은 면책 후 1년 이내에 신청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면책결정 후 1년은 빠르게 지나간다. 그래서 부정한 방법에 의한 면책취소도 효과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 결국 개인파산의 경우에도 현재로서는 면책남용에 대한 뚜렷한 대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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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회생절차의 경우는 어떨까. 개인회생절차의 경우도 채무자에 대한 면책결정 후 채무자가 기망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면책을 받은 것이 밝혀지면 법원이 직권으로 면책을 취소할 수 있다. 법원이 사건 종결 후 면책취소사유를 발견해 직권으로 면책을 취소하기는 쉽지 않고, 이해관계인은 면책결정의 확정일로부터 1년 이내에 면책취소를 신청해야 한다는 점에서 개인파산에서와 동일한 문제가 있다. 과다한 채무에 시달리는 개인이나 기업을 신속하게 구제해 새로운 출발을 하거나 회생할 수 있도록 돕자는 채무자회생법의 취지는 충분히 구현돼야 한다. 하지만 채무조정(면책) 후 사후관리에 관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거나 불완전하다는 것은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 있다. 신속하게 면책을 하려면 면책 이후의 관리절차가 완비돼야 한다. 향후 입법적 보완을 기대해 본다. <전대규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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