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조선시대는 지금보다 각종 권력형 비리가 난무했던 시대지만,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과거(科擧)시험에서의 비리는 좀처럼 상상하기 힘들었다. 제 아무리 왕족이라해도 반드시 과거시험을 통과해야만 관직에 오를 수 있었고, 고위직 자녀들이 받을 수 있었던 음서직들은 워낙 하급관직이고 승진도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오히려 대부분 기피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권세가의 자식들도 관료가 되려면 과거시험은 무조건 통과해야 했다. 심지어 권세를 잡은 사람들도 과거시험을 통과해야 벼슬이 주어졌다. 조선 제7대 임금 세조(世祖)의 최측근 공신이었던 한명회(韓明澮)는 반정에 성공해 공신으로 임명된 이후였음에도 벼슬을 얻기 위해 나이 40이 넘어서 과거시험을 봐야했다. 아버지가 영의정을 지냈던 권율 장군의 경우에는 사위인 이항복보다 2년이나 늦어 나이 46세일 때 과거시험에 합격했다. 행주대첩의 영웅인 권율조차 사위보다 후배로 들어갔다는 온갖 놀림 속에서 벼슬살이를 시작해야만 했다.
이처럼 과거시험은 돈도 빽도 소용없는 시험이었다. 경쟁률이 지금 입시(入試)시험보다 훨씬 살인적이었기 때문에 부정시험이 한 건이라도 발생하면 곧바로 시험 전체가 취소됐고, 비리가 걸리면 목을 내놔야했다. 매년 15만명이 응시해 33명만 최종합격되는 바늘구멍 뚫기보다 어려운 시험이기도 했다. 응시자는 너무 많고 시험은 워낙 어렵고 길다보니 답안지를 베껴서 내려해도 글을 제시간에 못쓰면 곧바로 불합격인지라 능력이 아예 없으면 컨닝조차 어려운 시험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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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부모나 일가친척 등 소위 '빽'의 개입이 거의 불가능한 시험이다보니 양반이 아닌 평민들의 합격률도 조선왕조가 망하기 전까지 50~60%를 꾸준히 유지했다. 500년 전에도 이처럼 입시만큼은 공정했던 나라에서 시험 한번 보지 않고 모든 입시과정을 통과했다는, 소위 부모 잘 만난 학생의 이야기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니 청년들은 하나같이 분노할 수밖에 없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던 초심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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