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와 시대 첫날 엇갈린 주일 韓·美 대사관
정상간 코드 안맞는다고 끝?‥ 정부 대응 실패로 꽉 막한 韓日
미래지향적 관계 외치지만 대책 없어..정치권도 손놔
[아시아경제 백종민 선임기자] 결단의 시기가 임박했다. 마이너스 성장이 보여주는 경제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일환으로 한일 관계의 정상화가 필요하지만 정부는 해결책을 모색하지 못한 채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우리처럼 관계가 악화됐던 중ㆍ일은 최근 새로운 밀월 관계를 구축하는 상황이어서 대일 정책과 관련한 정부의 돌파구 마련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라 할 수 있다. 동맹국과의 외교적 경색이 장기화될 경우 자칫 국익의 손해로 이어지는 상황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나루히토 일왕이 즉위하며 '레이와(令和)' 시대를 연 첫날인 1일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을 위한 전범 기업 자산 매각 신청이 이뤄진 것은 이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 실패로 볼 수 있는 사안이다. 징용 피해자 변호인단은 가장 상징성이 큰 날을 신청일로 잡았다. 정부가 이런 정황을 미리 파악하지 못했다면 상황 관리에 실패한 셈이고, 알고도 방관했다면 상대국의 잔칫날에 재를 뿌리려 했다는 눈총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외교부에서 일본을 담당하는 동북아1과장을 지낸 유의상 식민과냉전연구회 이사는 "(징용 피해자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떤 해결책도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틀 연속으로 일왕 퇴위와 즉위에 전문을 보냈고 이낙연 국무총리도 이에 동참한 상황에서 벌어진 자산 매각 신청은 우리에게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자칫 위기 상황 관리의 부재로 이를 방치했다는 외교적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3년 차가 되도록 우리 정부와 일본은 평행선만을 달리고 있다. 어느 한쪽도 양보는 없다. 우리 측의 위안부 합의 파기와 화해치유재단 해산에 일본이 주장한 우리 해군의 공격용 레이더 조사,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요구, 독도 영유권 도발 등과 같은 억지가 더해지며 감정의 골만 깊어지고 있을 뿐이다.
이 상태로만 보면 양국은 외교로 해결할 선은 이미 넘어섰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만났고 한일 양국 외교부 국장 간 정례 회동이 이뤄지고 있지만 그때뿐이다. 양국 정상의 해결 의지는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정치권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과거사 문제와는 별도로 미래 지향적 관계를 만들겠다는 입장이지만 무엇이 미래 지향적인 관계인지에 대한 청사진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뿐 아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왕의 사과를 언급한 것도 일본의 민감한 '역린'을 건드린 실책에 가깝다. 사과를 요구해놓고 나루히토 일왕 즉위를 축하한다고 하니 일본 측의 반응이 차가울 수밖에 없다. 축전 내용도 미래 관계 개선보다는 과거 문제에 더 방점이 찍혀 있다.
경제 위기 속에 우리 경제가 역성장하며 원화 가치가 하락 중이지만 위기 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일본과의 통화 스와프 협정은 중단된 상황이다. 과거를 위해 미래가 희생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강경 우파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상황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이런 정황은 현재도 곳곳에서 포착된다. 주일 한국 대사관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퇴임한 아키히토 일왕에게 한일 관계 발전에 힘써달라는 간단한 언급만 했을 뿐 홈페이지에서 문 대통령의 즉위 축전 등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이임을 앞둔 이수훈 대사의 환송회 행사 소식을 주요하게 다뤘다.
반면 윌리엄 해거티 주일 미국 대사는 대사관 홈페이지와 유튜브에 레이와 시대를 축하하는 메시지와 영상을 공개했다. 센카쿠열도 사태로 최악의 위기에 놓였던 대일 관계를 급속도로 개선 중인 중국도 대사관 홈페이지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나루히토 일왕에게 축전을 보낸 사실을 주요하게 거론했다.
현지 주재 공관장의 활동은 주재국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존 F 케네디 전 미 대통령의 큰딸인 캐럴라인 케네디를 주일 대사로 보내고 중국이 최근 외교부 최고 실세이자 지일파인 쿵쉬안유 부부장을 주일 대사로 낙점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수훈 주일 대사는 임명 당시 코드 인사 논란만 불러일으켰다. 미국과 중국에 비하면 무게감에서 처져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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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차기 대사로 내정된 남관표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에게 거는 기대도 주일 중국 대사에 대한 환영에 크게 못 미치는 게 현실이다. 한일 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남 내정자의 어깨에 지워진 짐이 버거워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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