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도용 피해’ 억울해도 법원 안가는 이유
재판 오래 걸리는데 이기기도 어려워... 업계 ‘차라리 나도 베끼는게 속편해’
[아시아경제 장용진 기자] 디자인 침해 사건에 대한 법원의 소극적인 자세가 창작의지를 꺽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권리침해를 구제해야 할 법원이 제때 판결을 내려주지 않는데다 승소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점 때문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 가운데 디자인 침해 문제에서 자유로는 기업은 거의 없다시피 한 실정이다. 현대기아차는 K5 등 몇몇 자동차의 라이에이터 그릴 모양 때문에 소송을 치렀고, 삼성은 갤럭시 시리즈의 디자인 때문에 미국 애플사와 소송을 벌인 바 있다.
최근에는 금호타이어가 중국 타이어 업체와 타이어 트레드 디자인을 놓고 소송을 벌인 끝에 승소했고, ‘갓뚜기’라는 별명과 함께 착한 기업의 대명사로 알려진 오뚜기는 제품용기 디자인 때문에 개인 디자이너와 소송을 벌인 끝에 1심에서 패소했다.
그러나 디자인 도용이 소송까지 간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라는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소송을 해도 승소할 확률이 낮다보니 침해를 당해도 왠만하면 포기하고 만다는 것이다.
디자인 침해 사건이 재판에서 피해자 측이 이기기 어렵다는 점에 대해서는 법조계도 대체로 의견을 같이한다. 단지 비슷하다는 점만으로는 결코 승소할 수 없다. 3년 전 ‘한뼘 정수기’ 디자인을 베꼈는지를 놓고 벌어진 정수기 회사 사이의 특허소송이 결국 원고 측의 패소를 끝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반적으로 특허소송은 발명품의 혁신성, 독창성, 기술적 진보성이 인정되면 침해로 본다. 쉽게 말해 기존 발명품과 유사하다면 대체로 침해가 인정된다. 하지만, 기술적 진보성을 인정하기 쉽지 않은 디자인의 경우 유사성외에 ‘베꼈다’는 것을 입증할 추가 증거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드물게 원고가 승소한 사건인 ‘오뚜기 용기 디자인 도용’ 사건만 해도 원고 측이 오뚜기와 사전에 디자인 협의를 진행한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면서 승패가 갈렸다. 반면 오뚜기는 자사가 디자인을 개발했다면 응당 있어야할 스케치를 증거로 제출하지 못해 반격의 기회를 잃고 말았다.
디자인 침해소송에서 피해자가 승소하기 어렵다는 것은 통계수치로도 확인된다. 대법원이 최근 발간한 ‘2016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5년 한해 동안 특허법원에서 처리한 디자인 침해 관련 특허소송 89건 가운데 원고(피해자) 승소로 끝난 사건은 25건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피고(침해자) 쪽이 승소한 것은 45건으로 두 배에 가깝고, 각하나 소취하처럼 사실상 원고패소로 볼 수 있는 사건까지 포함하면 64건에 달한다. 대법원에 가더라도 상황은 바뀌지 않아서 특허법원에서 올라온 22건의 상고사건 가운데 원심을 뒤집은 사건은 단 한 건도 없다.
여기에 지난 해 접수되고도 아직 처리되지 않은 미제사건도 42건에 달한다. 원고 승소 사건의 2배에 가까운 수치다.
재판에 걸리는 시간도 지나치게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대법원이 발간한 ‘2016 사법연감’에 따르면 특허소송 1건에 걸리는 평균시간은 특허법원에서 208.4일, 대법원에서 157.4일로 도합 365.8일이 정도다. 여기에 소장을 비롯해 서면을 접수하고 송달하는데 소요되는 2~3달은 제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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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달 사이에도 숱한 디자인이 뜨고 지는 산업 특성상 1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기간이다.
게다가 특허소송에서 사실상의 1심 역할을 하는 특허심판소에서 소요되는 시간(3~6개월)와 서면작성과 송달 등 소송준비 기간을 포함하면 실제 소요되는 기간은 2년에 가까울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다 결국 포기했다고 밝힌 한 업계 관계자는 “2년이라는 시간을 쓰고도 이길 가능성이 절반이하라면 안하는게 낫다”면서 “창작하겠다고 머리 싸매고 고민할 것이 아니라 대충 베끼고 짜붙이기 하면서 속 편하게 사는 게 낫겠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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