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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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모니카! 블루스 트래블러를 집약하는 한 단어. 경이롭다. 이들의 음악을 접하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말. 하모니카를 이렇게 연주할 수 있다니. 하모니카가 이렇게 아름답다니. 리 오스카(Lee Oskar)나 전제덕 같은 연주자들, 밥 딜런이나 김광석 같은 가수들 덕분에 하모니카가 주도적인 악기로 활용될 수 있다는 예증은 충분히 경험했다. (심지어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도 하모니카를 사용한다.) 블루스 장르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파워 하모니카, 괴물 하모니카 같은 말이 과장이 아니다. 블루스 트래블러의 하모니카는 강렬도 면에서 폭탄 같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하모니카 락이라니……


리드 보컬이며 하모니카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존 포퍼(John Popper)가 블루스 트래블러의 핵심이다. 올해 쉰이 된 그는 줄곧 비만과 싸우며 음악 활동을 지속했다. 그가 친구들과 협연하는 음악의 장르를 우리는 블루스 락(blues rock), 포크 락(folk rock), 서던 락(southern rock), 사이키델릭 락(psychedelic rock) 등등으로 부를 수 있겠지만, 장르 명칭은 음악 앞에서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음악은 독창적이다. 힘이 넘치고, 흥겨움과 슬픔 사이에서 격정적으로 요동한다. 빼어난 연주 실력을 바탕으로 라이브 무대에서 독보적인 역량을 드러낸다. 하모니카가 주도하지만, 기타와 베이스의 조화 또한 예사롭지 않다. 한 곡 한 곡을 면전에서 듣다가 거리를 두고 조망하면, 그들의 단독성(單獨性)을 확인할 수 있다. 한 번 들어본 사람이면, 어느 날 우연히 어느 곳에서 이들의 음악을 듣게 된다면, 하모니카 소리를 듣고 블루스 트래블러와 함께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박에’ 깨닫는다. 정전되었다가 다시 켜진 전등 아래 서 있는 느낌.

<낙천적인 생각(Optimistic Thought)>을 듣는다. 하모니카 연주 뒤에서 리듬을 세분하는 베이스 소리가 굵은 테두리를 그려낸다. 하모니카는 빠르게 빠르게 습곡을 만들어낸다. 입술 사이에서 퍼져 나오는 색색의 음표를 그 작은 악기가, 비눗방울처럼, 뿜어 올리는 것 같다. 마법사의 하모니카는 끊어지지 않는다. 음과 음의 분절이 사라진다. 흐르는 물이다. 하늘로 솟구치는 분수이다. 들숨 날숨 전부 하모니카 소리로 바뀐다. (존 포퍼의 연주를 유튜브에서 눈으로 확인해보는 것도 좋다.) 신난다. 춤을 춘다. 음악이 나를 춤으로 변형시킨다. 이 순간만은 근심이 없다. 해방되었다. 그래서 행복하다. 이것은 평정도 아니고, 격정도 아니다. 나와 노래는, 나와 당신은 단 한 번도 이별하지 않았다. 나와 음악은 한 몸으로 전진한다. <어쨌든(But Anyway)>이 이어진다. 하모니카와 기타의 쟁투. 이들 연주에서 흔히 펼쳐지는 악기들의 잼(jam) 대결이 시작되었다. 재즈로 이동했다가 돌아온다. 하모니카의 재등장. 치열하다는 단어가 어울린다. 아니 이것은 신들림이다. 하모니카 선율에 묶인 노예가 된 듯하다. 이들의 음악이 펼쳐놓는, 분절 없이, 끝없이 이어지는, 소리의 강가에 서 있을 때마다 연쇄되는 기표들이 떠오른다. 언어가 이러하다면……


교련은 일주일에 두 시간씩 있었다 우리는 플라스틱 총으로 제식훈련도 하고 앞엣총 우로어깻총 좌로어깻총 세웟총 차렷총 쉬엇총 총검술도 배웠다 찔러 길게찔러 때려비켜우로찔러 비켜우로베고찔러 돌려쳐 막고돌려차 우리반에는 방위를 제대하고 뒤늦게 진학한 동천이 형이 있었다 숙달된 조교였다 숙달된 조교는 시범만 보이면 땡이었다 동천이 형은 이가 고르지 않아 웃으면 무척 촌스러웠는데 그 형이 있어서 우리 반은 선배들이 함부로 하지 못했다 교련 선생님은 두 분이었다 한 분은 한국전 때 대구까지 피난 갔다 덩치가 커서 열여섯 어린 나이에 군대에 끌려갔다 대위까지 진급하신 역전의 용사 또 한 분도 육군보병학교 출신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하신 역전의 용사 두 분 다 하루에 몇 번씩 전투화를 신었다 벗었다 하는 것이 얼마나 고역인 줄 아느냐고 투덜투덜
―박순원, <컬러 티브이(TV) 시대가 열렸는데>(<<에르고스테롤>>) 부분

총총총, 총총총…… 총이 떠다닌다. 문자 ‘총’이, 소리 ‘총’이 행진하다가 실제로 총이 생긴 것 같다. 교련복으로 ‘환복’한다. 교련 선생님에게 개기다가 운동장에 머리를 박았다. 분이 안 풀렸는지, 그는 우리에게 김밥이 되라고 명령했다. (‘김밥말이’는 음식의 이름이 아니다!) 우리는 흙으로 이불을 덮었다. 흐흐흐. 박순원 시의 리듬은 존 포퍼의 하모니카 연주처럼 끊어지지 않고 연속된다. 박순원의 작품은 언어 연속체 안에 세계를 담아내는 산문시의 한 예이다. 스웩(swag)에 ‘쩔어’붙은 힙합이 아니다. 컬러 티브이 시대에도 교련은 계속되었고, 군부독재 시절이었는데, 교련은 남학생들이 그래도 좋아했던 과목. ‘성문’이나 ‘정석’보다 제식과 총검술이 더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신체를 움직이는 수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겨우 이몽룡의 나이를 지나고 있었다. 구르는 잎새만 봐도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던 여학생이 아니라, 여자라는 말만 들어도 불끈거리던 남자고등학교 학생이었다.


[장석원의 시와 음악의 황홀 속으로 10]블루스 트래블러 원본보기 아이콘
존 포퍼의 하모니카는 응축된 관악기이다. 그의 하모니카는 압축된 키보드이다. 나는 그의 하모니카 소리를 듣는데 올갠이 보이고 색스폰이 번쩍인다. 아코디언이 춤추는 것 같다. 그의 하모니카가 빚어내는 유려한 율동은 분절되지 않는 시간을 감지하게 만든다. 시간은 시작도 끝도 없는, 끊어질 수 없는 흐름이다. 인간은 필요한 단위로 시간을 분할하여 인식의 대상으로 삼지만, 인간이 시간에 표식을 남긴다 해서 시간이 실제로 단속(斷續)되지는 않는다. 억 분의 1초와 1억 광년의 차이를 우리는 감각으로 인지할 수 없다. 우리는 음악이 존재하는 현재만을 경험한다. 음악은 지금, 실재한다. 블루스 트래블러가 <마운틴 크라이(Mountain Cry)>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웅장한 산이 보이고, 계곡과 계곡 사이를 건너온 바람을 만진다. 흰 구름과 나무 그늘의 대비. 서늘하다. 아름다운 그녀를 만났던 이 산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잃었습니다. 나는 울 수 없어요. 산이 크게 흐느낍니다. 산의 어깨가 들썩입니다. 나는 떠나간 사랑을 찾아 산을 헤맸는데…… 기타가 절규한다. 악기와 가수는 함께 젖는다. 쉽게 마르지 않을 것이다. 이 밴드의 음악을 여러 가지 명사로 지칭할 수 있지만, 밴드 이름에 들어 있듯이, 블루스가 이들의 혈액형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하모니카가 다른 악기를 거느린다. 하모니카 소리가 오장을 쏟아낼 듯한 통곡을 닮았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김소월, <초혼>) 파열 후, 산록을 넘고 넘는, 흩뿌려져 산의 내부로 빨려드는 하모니카의 잔향(殘響). 그 끝, 나를 스치는 편경의 맑은 파동.


돌의 소리는
돌의 결 따라 켜켜이 맺혀


돌비늘을 하나 떼어
허공에 매달면
각시처럼 수줍게
바람을 부비며 속삭이고
―황봉구, <편경(編磬)>(<<생선가게를 주제로 한 두 개의 변주>>)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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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경도 직육면체이고, 하모니카도 그렇다. 어떤 학생은 하모니카를 짓다만 빌딩 같다고 말했다. 황순원도 동시 <빌딩>에서 “하모니카 / 불고 싶다”고 썼다. 바람이 통과하는 빌딩. 바람을 내뿜는 작은 직육면체. 사람의 숨을 음악으로 바꾸는 이 금속 신체에는, 날숨 들숨이 드나들 수 있는 구멍이 많다. 생명의 호흡이 움직이면서 음악이 탄생한다. 이 악기는 멈추지 않는다. 생명처럼, 끊김을 모른다. 허공의 바람을 빨아들여 “돌의 결”에 묻어 두었다가 두드릴 때마다 돌멩이 편경은 새싹처럼 파동을 틔워낸다. 하모니카는 제 몸을 비워두고 지나는 바람에게 음악이 되라고 말한다. 숨이 하모니카를 지나자 음악으로 변양(變樣)된다. 음악이 사람의 안과 밖을 드나든다. 음악과 숨이 하나가 된다. 모르는 사이에, 부드럽게, 연결되는, 연속되는, 합체되는 하모니카가 뜨거워진다.


<캐롤리나 블루스(Carolina Blues)>가 다가온다. 기타가 주도한다. 나는 기타 위에서 놀고 있다. 하모니카가 기타로 전이(transition)되는 순간이 기대된다. 기타인지 하모니카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기타인 줄 알았는데 하모니카였다. 숨어 있던 기타가 모습을 드러내고서야 그것이 하모니카인지 알 수 있었다. 분리되지 않는다. 간단(間斷)이 없다. 블루스 트래블러의 음악은 이것과 저것과 그것의 구분을 허용하지 않는다. 온몸을 한꺼번에 출렁이게 한다. 하모니카와 베이스와 기타가 ‘동시에’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다. 일체(一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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