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범죄자에 360억 송금한 은행…법원 "책임 없다"
[아시아경제 문제원 기자] 회사 명의로 된 예금을 빼돌릴 목적으로 위조된 자금 이체 요청서를 제출한 해외 항공사 직원에게 360억원을 송금한 하나은행이 '배상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6부(이수영 부장판사)는 최근 글로벌 항공사 에미레이트가 하나은행을 상대로 '약 360억원의 예금을 지급하라'는 취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고 30일 밝혔다.
에미레이트는 2004년 한국 영업소를 설치하고 이듬해 3월 하나은행에 입출금식 예금계좌를 개설했다. 당시 에미레이트가 제출한 예금거래 신청서에는 한국 영업소 회계ㆍ재무 담당책임자인 A씨와 지사장 B씨의 서명이 첨부됐다.
에미레이트는 2005년 하나은행과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1600만원 이하까지는 A씨와 B씨의 서명만으로 예치된 자금의 이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A씨는 이 같은 협약을 이용해 2006년 1월부터 2012년 5월까지 1600만원 이하에 대한 자금을 1310회에 걸쳐 요청하는 방식으로 에미레이트의 하나은행 예금 360억원을 횡령했다.
에미레이트는 뒤늦게 A씨의 횡령 범행을 인지하고 그를 수사기관에 고소했으나 A씨는 2012년 8월 미국으로 출국한 뒤 잠적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소재불명을 이유로 기소중지 처분을 했다.
이에 에미레이트는 이체거래는 A씨가 B씨의 서명을 위조해 작성한 자금이체 요청서에 의한 것임으로 무효라고 주장하며 지난 2015년 8월 하나은행을 상대로 360억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이 사건 이체거래에 B씨의 진정한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무효'라고 인정하면서도 하나은행 입장에서는 당시 A씨가 정당한 이체 권한을 가졌다고 믿을만한 사정이 있었던 만큼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예금거래 신청서에 첨부된 B씨의 서명이 원래 B씨의 서명과 특별한 차이가 없었다"며 "은행 직원에게 어떤 과실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고유가 지원금 받아도 1인당 30만원 또 준다…18일...
이어 "은행은 요청된 이체거래의 금액에 해당하는 서명권자의 신고된 서명과 요청서에 기재된 서명이 유사한지 대조할 의무를 부담할 뿐"이라며 "그 서명이 정당한 권한 있는 자에 의해 이뤄진 것 인지까지 확인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강조했다.
A씨가 본인 뿐 아니라 아내의 명의로 거액의 회사 자금 이체를 요청한 것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은행에 실체적인 사항을 확인할 의무까지 부과하는 것은 현실적인 금융거래 관행에 반한다"며 "글로벌 대기업인 에미레이트에 위와 같은 위험의 발생을 방지할 수 있는 장치 등을 갖추도록 요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