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완주 정치부장]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문명 발달의 역사에 대해 상당히 흥미로운 관점을 선보였다. 유라시아의 문명이 다른 문명을 정복해 지금까지 지배력을 유지한 이유를 집중적으로 파헤친 것이다.
저자는 그 해답이 유라시아 인종의 지적, 유전적 우월성이 아니라 지리적 환경의 차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지리적인 차이로 식량 생산의 격차는 물론 문명의 확산 속도까지 달라졌다고 본 것이다.
예를 들어 유라시아는 대륙의 축이 동과 서로 이어져 기후 변화가 비교적 적은 탓에 문명 간 교류가 용이했다. 반면 신대륙인 아메리카의 경우 대륙의 축이 남북으로 넓게 퍼져 대조를 이룬다. 따라서 신대륙의 극심한 기후 변화가 문명의 교류를 방해했다는 시각이다.
문명의 발달이 지리적 환경에 좌우됐다는 시각은 우리의 정치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해방 후 대한민국 정치사는 결과적으로 영남과 호남을 기반으로 한 정치세력의 대결 구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유라시아의 인종차별이 그랬던 것처럼 영ㆍ호남의 지역주의 차별은 우리 정치를 오염시켰다.
최근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간의 통합 논의가 정치판을 온통 들쑤시고 있다. 각 당에 소속된 국회의원들은 각자의 지역 기반에 따라 주판알을 달리 굴리는 중이다. 셈법이 틀리다 보니 '탈당'과 '분당'으로 어깃장을 높은 모습이 반복되기도 한다.
야3당의 합당이나 통합 시도는 과연 합당한 명분일까. 일단 정치적 명분이 애매하다. 정치적 정체성의 차이가 걸림돌이라는 의미다. 탄핵정국의 여파로 갑자기 구축된 다당제 구도에 답을 찾지 못해 이합집산을 서두르는 모습도 볼썽사납다.
일단 야3당은 합당이나 통합을 거론하기 전에 내년 지방선거에 앞서 개헌 구도를 어떻게 가져갈 지 입장을 정하는 것이 선결 문제가 아닐까 싶다.
다당제는 기본적으로 의원내각제에 적합한 정치 구도다. 대통령제를 채택한 국가의 경우 후진국을 제외하면 양당 구조가 정착됐다. 영국의 경우만 특이하게 양당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결국 개헌을 앞두고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또는 제3의 길을 정한 후에 정계개편을 준비하는 것이 순서라고 본다. 옷에 맞지 않는 정당 구도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혼란을 반복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으로 돌아갈 뿐이다.
물론 야당의 이합집산이 파생될 수밖에 없는 속내는 짐작할 만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의도가 정치적 명분을 정당화시킬 수 없는 일이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각각 지역적 기반이 크게 흔들린 탓에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이야 삼척동자도 안다. 한국당도 지금대로라면 자민련처럼 자칫 '영남지역당'으로 전락할 위기를 본능적으로 느낄 것이다.
미국 하원의장을 지낸 토머스 오닐은 "모든 정치는 지역적"이라고 일갈했다. 야당 정치인들은 오닐의 정치철학을 너무 맹신하는 듯하다. 정치적 지향점이나 철학, 정체성이 애매한 야당끼리의 합당이나 통합이 오래갈 리 만무하다.
따라서 흔들리는 지역 기반의 대용품으로 정계개편을 꺼내드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차라리 개헌 논의를 통해 정치 철학과 정체성의 동질성을 서로 확인한 다음 헤어지고 합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택하는 것이 정치적 명분도 살리는 일이다. 그 만큼 생명력도 길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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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는 지리적 환경의 차이라는 '발랄한' 관점을 선보여 성공을 했다. 하지만 지리적 환경에만 매몰된 야당의 정계개편 시도는 입맛만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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