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의 정치학]③암살자의 말로, 비참하거나 혹은 아름답거나
안두희의 최후와 샤를로트 코르데의 죽음
암살자의 말로는 결국 죽음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죽음의 모습과 역사적인 평가가 다 같은 것은 아니다. 백범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의 최후와 장 폴 마라의 공포정치를 끝낸 샤를로트 코르데의 최후는 사뭇 다르다.
안두희는 이승만 정권에서 권력의 비호를 받았고 이후에는 공소시효 등을 이유로 법의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김구 선생 암살범을 쫓는 개인들의 추적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백범살해진상규명투쟁위원회 간사 김용희는 1961년 추격전 끝에 안두희를 붙잡아 사건의 전말을 녹취한 뒤 그를 검찰에 넘겼다. 하지만 검찰은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1965년에는 김제 출신 청년 곽태영이 안두희를 찾아내 중상을 입혔지만 그는 극적으로 살아났다.
민족정기구현회 회장 권중희는 10년 넘는 추적 끝에 1987년 안두희를 찾아냈고 1992년에는 자백을 받아냈다. 이런 내용이었다. "김창룡 특무대장의 사주를 받아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했다.", "범행 직후 특무대 영창으로 면회를 온 김창룡으로부터 '안의사 수고했소'라는 칭찬을 들었다." 하지만 처벌 받지 않았던 안두희는 결국 4년 뒤인 1996년 10월23일 오전 인천시 중구 자택에서 당시 버스 기사였던 박기서가 휘두른 '정의봉'에 맞아 사망했다.
1793년 7월13일 프랑스 혁명을 주도한 장 폴 마라를 죽인 샤를로트 코르데의 마지막 모습은 그림으로 남아 있다. 장 자크 오에르가 그린 마라의 죽음을 보면 암살자 코르데가 중앙에 서있다. 마라를 찌른 칼을 오른손에 든 아름다운 코르데의 표정은 의연하고 욕조에서 죽은 마라의 눈은 생기 없이 허망하기만 하다. 장 자크 오에르는 코르데가 처형되기 전 그녀의 초상화도 그렸다. 폴 자크 에메 보드리의 작품에서도 코르데는 확신에 찬 눈빛을 하고 있다.
로베스피에르 등과 함께 공포정치를 주도한 마라는 무수한 사람을 반혁명분자라는 이유로 단두대로 보냈다. 그가 처형한 사람들 중에는 온건한 지롱드당원들도 많았다. 마라에 의해 스러진 목숨들은, 스물다섯의 지롱드당 지지자 샤를로트 코르데가 마라를 죽이는 것이 프랑스를 살리는 것이라고 믿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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