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우표 번복사태…'이념의 전쟁터' 돼버린 우표
전임 정권서는 일사천리 진행
정권 바뀌자 초유의 발행 취소
정치적 논란·갈등에 따라
결정 번복 가능 선례 남겨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우표 발행이 없던 일이 됐다. 보수단체와 일부 야당은 "있어선 안될 일"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애당초 정치적 논란 속에 진행됐던 사업이 더 거센 정치적 격랑속으로 휘말리는 모습이다. 우표발행을 사상 처음으로 번복한 우표발행심의위원회에 대한 '거수기' 논란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박정희 우표는 시작부터 정치적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었다.
박정희 우표사업은 박정희대통령생가보존회의 요청을 받아 경북 구미시청이 지난해 4월 우정사업본부에 신청하면서 진행됐다. 발행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우표발행심의위원회는 박정희 우표 제작 요청 한달 뒤인 지난해 5월 회의를 열고 만장일치로 발행을 결정했다. 당시 9명이 참석해 9명 전원이 발행 찬성 결정을 내렸다. 심의회 총 재적인원은 17명이다. '우상화'는 물론 '졸속심의'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정치적 결정이라는 비판이 터져나왔다. 당시 백범김구기념관이 신청한 '백범일지 출간 70주년 기념우표'는 불허됐다.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이었다.
논란이 계속돼 왔지만, 우본은 "우표 발행 절차상 문제가 없었으므로 발행을 취소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정치적 시비로 우표 발행이 번복될 경우, 독립적인 우표발행심의위의 입지가 곤란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우본은 "심의위는 미래부나 우정본부와는 독립적인 기관이다. 심의위의 결정이 '외풍'에 의해 번복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도 했다. 심의위원 명단도 공개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심의위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 우본의 입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근거가 없다는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우표류 발행업무 처리세칙' 제17조 2항 2호에 근거해 재검토에 나섰다.
'우표류 발행업무 처리세칙'에는 우표발행심의위원회는 우표발행과 보급에 우정사업본부장의 자문에 응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김기덕 우정사업본부장은 우표발행심의위원회에 우표발행의 재심의가 가능한지 여부를 묻는 자문안건을 올렸다. 29일 임시회의에서 심의위는 재심의 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총 14명의 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11명이 찬성, 1명이 반대, 2명이 기권했다.
12일 재심의가 열렸고 논란 끝에 표결로 들어갔다. 박정희 우표 발행 취소가 결정됐다. 총 12명 참석에 발행철회 8명 , 발행추진 3명, 기권 1명이었다. 작년엔 참석자 9명의 만장일치로 발행추진을 결정하더니, 1년만에 8명이 발행철회에 손을 든 것이다.
지난 1년간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는 한국사회에서 아무런 변동이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마다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라는 점은 똑같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정권의 주인이다. 우본의 재심의 요청과 심의위의 번복 결정이 '정치적 결정'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박정희 우표 번복 사태로 인해, 앞으로 특정 인물을 기념하는 우표는 정치적 갈등과 논란에 따라 번복 가능한 사업이 됐다.
2.54㎠, 엄지손톱 만한 1제곱인치짜리 종이가 이념의 전쟁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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