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책과 저자]칠레 시인 세르히오 바디야 카스티요
리얼리티 해체의 세계 다룬 '트랜스리얼리즘의 창시자'
"위키피디아에 내가 아직 한국어로는 소개되지 않았더군요. 당신이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산티아고에서 안부를 전하며."
칠레 시인 세르히오 바디야 카스티요(70)가 페이스북 메신저를 이용해 연락했다. 그는 시인들의 국제적인 연대를 추구하는 몇몇 인터넷 동아리와 관계망 덕에 나와 연결되었다. 이런 동아리와 관계망은 유럽과 남미에 두루 퍼져 있다. 특히 남미 쪽에서 활발한 듯하다. 브라질을 빼고는 모두 스페인어를 사용하니까 연대하는 데 장애가 적을 것이다.
세르히오는 지난 4월 13일 오전 5시 1분에 스페인어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대답을 미루자 닷새 뒤 한글로 같은 내용을 다시 보냈다. 번역기를 돌린 것 같았다. 나는 오래 전에 스페인 출장을 갔다가 배운 말로 "알았다(Si, entiendo)"고 대답했다. 그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그림문자를 보냈다.
그 뒤 세르히오는 내 이마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엄지손가락으로 스티커를 붙인 것 같았다. 그래서 어린이날 오후 11시 2분에 연락을 했다. "시인이 아니라 기자로서 당신과 당신의 작품에 관심이 있습니다. 칠레 문학은 한국에 잘 알려진 편이 아니에요. 파블로 네루다밖에 모르는 사람도 많을걸요. 질문을 할 테니 대답해 줄래요?" 엄지손가락.
바디야는 아버지(호세)의 성, 카스티요는 어머니(마리아)의 성이다. 세르히오는 1947년 11월 30일에 칠레의 발파라이소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뱃사람으로 알려졌는데 세르히오가 적은 대로 해군이었을 것이다. 1973년에 칠레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다음 20년에 걸친 세르히오의 망명생활이 시작되었으니까.
재미있는 사실은 세르히오가 아버지의 영향으로 유랑생활을 동경했다는 점이다. 그는 긴 시간을 스웨덴에서 보냈지만 루마니아에서도 살았고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여행하기도 했다. 칠레 대학에서 저널리즘, 스톡홀름대학에서 사회인류학을 공부한 그는 스웨덴 라디오 방송국에서 13년 동안 일하며 스웨덴의 시를 영어로 번역했다. 1993년에 칠레로 돌아가기 전 몇 년 동안은 언론사와 대학에서 일했다.
카스티요는 1973년 첫 시집(Amid the Cement and the Grass)을 발파라이소에서 자비 출판했다. 1981년부터 1987년까지 스칸디나비아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일련의 시집이 높은 평가를 받으며 유럽 문단에 존재를 각인했다. 그의 초기시는 신화와 우화를 소재로 삼은 작품이 많다.
세르히오는 칠레로 돌아간 다음 전과는 다른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노르딕 사가'가 그 시작이었다. 그의 후기 작품들은 트랜스리얼리즘이라는 형식으로 압축된다. 세르히오는 현실에 도전하며 유령과 다름없는 세계를 창조한다. 단어와 시간, 차원의 변화가 시의 틀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의 시에서는 시간의 착란 내지 교차가 빈번히 일어나기도 한다.
-당신은 트랜스리얼리즘의 창시자로 알려졌다. 트랜스리얼리즘이 뭔가?
"나는 리얼리티를 완전히 이해하게 해줄 콘텍스트의 온전한 형태를 찾고자 했다. 한 텍스트 속에 과거, 현재와 미래까지 포함하는 프랙탈(같은 구조가 작은 규모에서 큰 규모까지 반복되어 나타나는 형태)을 사용하여 그 콘텍스트를 찾아내려 했다. 이때 나는 리얼리티란 내가 상상해온 여러 플롯의 현상화라는 점을 인식했다. 나는 시간이란 개념을 비동시성, 두음문자, 시간이동 등으로 대체했다."
-망명시기의 삶과 문학에 대해 말해 달라.
"나는 20년 동안 내 나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 동안 칠레인으로서 내 영혼이나 정체성은 완전히 벗겨져 나갔다. 1년 반 정도 산 루마니아에서 나는 칠레 시인 오마 라라와 티토 발렌수엘라, 그리고 아마도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 중 하나였을 마린 소레스쿠를 사귀었다. 스웨덴에서 17년 정도 살며 아드리안 산티니, 카를로스 게이비츠, 세르히오 인판테 등과 함께 칠레 시인 모임인 '스톡홀름 워크숍 그룹'을 창설했다. 스웨덴 작가 순 악셀손의 도움이 컸다. 그는 스칸디나비아에 있는 중요한 시인들을 모두 연결해 주었다. 그중에 2011년 노벨상 수상자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머도 있었다."
-당신의 예술적 배경을 설명한다면?
"내 아버지는 해병이었고, 출판은 하지 않았지만 시를 쓰셨다. 그리고 스페인과 남미의 고전들을 많이 읽으셨다. 나 또한 유베날리스, 카툴루스, 핀다르, 호메로스의 시와 바쇼의 하이쿠를 읽고 감명을 받았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훌륭한 선생님인 루이스 발레를 만났는데 그는 내게 횔덜린, 릴케, 노발리스 같은 독일 낭만주의 시인뿐 아니라 랭보, 말라르메, 로트레아몽, 베를렌 같은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을 소개했다. 대학에 가서는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은1960년대 젊은이들의 시들을 읽었다. 동시대의 단체 중 내가 원래부터 관련이 있는 곳은 'ACLIT'다. 발파라시오에 있는 창작자들의 집단이다."
-파블로 네루다의 영향은.
"거의 없다. 보편적 역사의 특정 에피소드를 묘사하는 거대한 스케일 같은 기본적 요소가 비슷할지는 모르겠다. 네루다의 '지상의 거주지'(1933)는 나보다 훨씬 앞 세대의 작품이다."
- 당신의 최고 작품을 꼽는다면?
"내 생각엔 '도마뱀의 시대'(2016)다. 이 책이 아니라면 -비평가들과 동료 시인들에 따르면- '노르딕 사가'(1996)다. '도마뱀의 시대'는 1990년과 2015년 사이에 쓴 내 글 중에서도 최고만 모은 책이다. '노르딕 사가'에는 스칸다나비아의 전설을 모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이야기하고, 또 나의 시적인 언어로 풀어낸 나의 전설이다."
-당신이 아는 한국 작가나 예술가가 있는가.
"인상적인 시인을 꼽는다면 단연 고은이다. 그가 쓴 '문의마을에 가서', '새벽길', '백두산'을 읽었다. 고은과 나는 리얼리티의 해체적 형태인 여백이란 주제에 관심이 있다. 사회적 정의에 대한 요구는 우리를 집어 삼키기도 하고, 떠나게 만들기도 한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세르히오 바디야 카스티요>
옛 레닌그라드의 어느 변두리에서 조지프 브로드스키를 보았네.
그가 멀리 떨어진 경계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듯
흐릿한 눈으로 바라본 네바(강)는 마비되어 실망스럽고도 초라하였네
창백한 겨울 태양 아래서.
휴대용 라디오를 든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그의 곁을 스쳐가네
볼륨을 한껏 높인 채로.
그의 발 아래-움직이는-딱딱하게 굳은 눈에 덮인 배수구가 삐걱거리고
돌풍이 숨은 쌍돛 범선의 돛대를 구부리니
얼음 조각 아래서 뒤뚱거리네.
동부 발트 해협은 섬들 사이에서 얼어 붙었고
안개는 방랑자의 정처 없는 기억을 지워버리네
긴 항해를 마친 뱃사람들은 보드카와 맥주로 축하하고
굴뚝은 한 줄기 담배 연기를 뿜어내느니
오직 불길만이 이 겨울의 오만함을 녹일 수 있으리!
바에 앉은 소녀들은 녹황색 가드한 잔을 들고 웃네
아르고호의 젊은 선원은 고주망태가 되어 테이블 사이를 지나느니
숲속의 벌거벗은 님프를 상상한다네.
어두운 방은 오늘 밤 나를 기다리네.
오랜 불면의 시간
내가 잃어버리고 말 금빛 자물쇠는
내가 한때 순수하게 사랑한 적들의 땅에 있네.
오늘 아침 조지프 브로드스키를 다시 보았네.
레닌그라드의 변두리
마치 머나먼 확실함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듯
우울하고 초췌한 그를
창백한 겨울 태양 아래서.
※조지프 브로드스키: 소련의 망명 시인. 198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태국 호텔에서 체포된 한국인 의사…한번에 2만원 ...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