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나희 '여행의 취향'

[허진석의 책과 저자] 일상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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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년 9월 3일. 나는 새벽 3시에 카를스바트를 몰래 빠져나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를 놓아주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쓴 '이탈리아 기행'은 이렇게 시작된다. 카를스바트는 독일어 지명이다. 지금은 카를로비바리라고 부른다. 체코 서부에 있는 도시다. 인구는 지난해 기준으로 4만9326명. 좋은 온천이 있고, 매년 7월 '카를로비바리 영화제'가 열린다. 괴테의 여행은 카를스바트를 떠난 뒤 1788년 6월 18일까지 약 22개월이 걸렸다. 여행길에 오르면서 "나는 살아가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하는 어린아이와 같다"고 한 괴테는 이 여행이 자신을 '다시 태어나게 하고 혁신시키고 충실을 기할 수 있게' 했다고 적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 쓴 연작시 '로마 엘레지'는 로마를 여행한 괴테의 감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제 고전의 땅에서 나는 기쁘고 영감에 차 있다. 옛날과 오늘의 세계가 더 큰 소리 더 큰 매력으로 말을 건넨다."


 괴테는 레겐스부르크, 뮌헨, 베로나, 베네치아, 피렌체 등을 거쳐 로마에 이르고 나폴리와 시칠리아로 넘어간다. 여러 곳을 누볐지만 목적지는 로마였다. 괴테는 1786년 12월 3일 로마에 도착한 날이 '나의 제2의 탄생일이자 진정한 삶이 다시 시작된 날' 이라고 기록했다. 또한 일 년 반가량 로마에 머무르는 동안 칼 아우구스트 공에게 보낸 편지에 '이곳에서 예술가로서 자신을 새롭게 발견했으며 처음으로 자신과의 일체감을 느꼈다'라고 고백했듯이 이탈리아 여행은 괴테에게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내면이 성숙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당시에도 '여행 안내서'는 있었다. 괴테는 고고학자 요한 요하임 빙켈만이 쓴 '고대 예술의 역사'(1764)를 읽었을 것이다. 이 책은 당대에 이탈리아 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참고 자료가 되었다. 빙켈만은 로마를 '세계의 대학'이라고 했거니와(고전해설ZIPㆍ지만지), 18세기 말 유럽에서는 서구 문명의 기원으로서 로마 문명에 대한 탐구와 '그랑투어(Grand Tour)'가 유행하면서 영국과 프랑스, 독일 지식인들의 로마 여행이 잦았다. 청출어람이라고 했듯이,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문은 빙켈만을 넘어 문학예술사에 빛나는 유산으로 남아 있다.


 괴테는 아주 적극적인 여행자였다. 베수비오 화산에 네 번이나 올라갔다. 서기 79년에 폼페이를 돌과 재로 덮은 그 화산은 괴테가 폼페이를 방문했을 때도 폭발하여 나그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괴테는 1787년 3월 6일 안내자와 함께 베수비오 정상을 향해 걷는다. 용암이 분출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고 싶어 분화구 입구까지 접근한 그는 화산이 활동을 시작해 굉음을 토하며 돌덩이를 날리는 바람에 위험한 지경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위험스러운 상황은 그 속에 무언가 매력적인 요소가 있고 그 위험을 무릅쓰도록 인간의 반항심을 부추긴다'고 썼다.


 고래로 문학과 사상의 대가들이 여행을 하며 그들의 내면을 올곧게 다지고 깊이를 더했다. 앙드레 지드는 '콩고기행'에서 자연과 인간을 통찰하면서 아프리카에 대한 프랑스 식민주의의 불의를 고발하였다. 하인리히 하이네는 '하르츠 기행'에서 자신의 이상이 어떻게 산문정신을 바탕으로 한 문학성과 연결되는지 보여주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당대 조선의 지성을 보여주는 뛰어난 기행문이다. 사실 헤로도토스의 '역사(Historiae)'도 거대한 기행문학에 다름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리스의 섬들을 여행하고 쓴 '먼 북소리'는 충만한 정서와 넘치는 상상력으로 감동과 재미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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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와 기행문학이 문사나 사상가의 전유물이던 시대는 지나갔다. 최근에는 '여행작가'라는 명함을 걸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재기 넘치는 여행기를 써내고 있다. 이들은 뛰어난 글 솜씨와 사진 실력을 겸비하고 현장(주로 해외)에 뛰어들어 체험한 사실을 정리한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물 역시 크게 보아 기행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최근에 출판인 고나희가 낸 '여행의 취향'(더블:엔)도 그러한 책이다. 고나희는 전형적인 '요즘 청년'이며 여행작가다. 그는 이 책에서 '다음 여행지에 대해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을 낙으로 삼으며 일상을 여행으로, 여행을 일상으로 여기는 일상여행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인간은 그들이 살아내는 삶이 늘상 그렇듯 정처 없는 시간의 나그네다. 고도로 지성과 지력이 발달한 자들에게 여행은 본능이자 숙명이 된다. 레프 톨스토이가 아스타포보라는 작은 시골 기차역에서 숨을 거두었음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전혜린은 '먼 곳을 향한 그리움(Fernweh)'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녀가 인용한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시(섬의 노래 - Lieder von einer Insel)는 이렇다.


누구든 떠날 때에는 여름내 모은
조개들과 함께 모자를
바다에 던져버리고
머리칼 흩날리며 떠나야 하리
사랑을 위해 차린
식탁도 바다 속에 던져버리고
잔에 남은 포도주도
바다에 쏟아야 하리
물고기들에게 제 몫의 빵을 던져주고
피 한 방울 바닷물에 섞어야 하리
나이프를 파도에 실어 보내고
구두마저 바다 속에 가라앉혀야 하리
심장과 닻과 십자가
그리고 머리칼 흩날리며 떠나야 하리
언젠가 그는 다시 돌아오리니
언제냐고?
묻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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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스포츠 부국장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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