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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요일에 읽는 전쟁사]500년전 무기, 대장군전…조선시대의 '미사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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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국립박물관에 배치된 대장군전 모습(사진=위키리크스)

진주국립박물관에 배치된 대장군전 모습(사진=위키리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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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조선시대 무기 중 도저히 조선시대 것으로 보이지 않는 무기가 하나 있다. 아무리 봐도 현대 미사일처럼 생긴 이 무기의 이름은 대장군전(大將軍箭). 천자총통에 꽃혀있는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현대 무기쪽으로 가야할 미사일이 잘못 온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대포 탄환으로 쓰이던 철환 모습(사진=위키백과)

대포 탄환으로 쓰이던 철환 모습(사진=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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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근대시대 대포알이라고 하면 '알'이란 표현에 맞게 전부 공모양의 철환(鐵丸)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장군전이 활발히 쓰였던 임진왜란 당시에도 전 세계에 이런 미사일 모양의 탄환을 쓰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었기 때문에 더욱 상상하기 힘든 디자인이다.
특히 대장군전은 조선 수군에 배치돼 판옥선이나 거북선에서 많이 쐈다고 전해진다. 최근 들어 임진왜란 관련 사극이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다.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 등장한 대장군전 모습(사진= KBS 불멸의 이순신 캡쳐)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 등장한 대장군전 모습(사진= KBS 불멸의 이순신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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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선시대 미사일은 원래 큰 화살이란 개념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임진왜란 이후인 인조13년(1635년)에 간행된 '화포식언해(火砲式諺解)'에 따르면 대장군전은 2년 묵은 나무로 만들었으며 그 무게가 56근3냥(약 33.7㎏)이고 사정거리는 900보(약 1.6㎞)에 이르렀다고 한다. 나무 위에 철을 덧씌우고 머리 쪽에 철로 된 탄환을 붙이고 철로 만든 날개를 달았다고 한다.

대장군전 발사 시연모습(사진=해군사관학교)

대장군전 발사 시연모습(사진=해군사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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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사관학교에서 복원작업을 실시한 이후 실제 화약을 넣고 사격실험을 한 결과 화강암에 박혀서 80cm를 관통했다고 전해진다. 이 위력으로 봐서 임진왜란 당시 나무로 만든 함선에 쏜다면 한방에 배가 가라앉을 수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당시 왜군에게는 공포의 무기로 조선군이 대들보를 쏴대서 병사들이 혼란에 빠졌다는 기록들이 남아있다고 한다.
세계전쟁사에도 매우 중요한 무기 중 하나라고 하는데 해상전에서 대인용 무기가 아니라 함선에 직격하는 대함용 무기로는 거의 최초의 무기로 알려져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생긴 것도 현대 대함미사일인 하푼미사일과 비슷하게 생겼다.

AGM-84 하푼(Harpoon)미사일 모습(사진=위키리크스)

AGM-84 하푼(Harpoon)미사일 모습(사진=위키리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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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당시에는 전시에 활용할 대형목선을 제작하는 기술이 아직 나오기 전이라 무거운 화포 배치가 힘들었고 장착할 수 있는 화포 숫자도 제한적이었다. 해상전에 돌입한 군대는 대부분 배를 목표로 하는게 아니라 상대측 선원을 살상하거나 불을 지르거나 혹은 여러 방법으로 돛대를 부숴 상대의 기동력을 없애는 방식으로 싸웠다.

대부분 해상전은 50m 이내까지 접근해 조총이나 활로 사격하거나 혹은 병사들이 적함으로 넘어가 싸우는 백병전이 대세였다. 왜군은 이런 당시 해전에 맞춰 기동력이 좋고 빠른 배를 갖추고 함선에 대부분 중무장한 병력이 탔다. 그러다보니 배의 내구성이 낮았고 함포사격에 취약한 상황이었다.

조선군은 이보다 더 현대적인 해상전을 펼쳤다. 함선을 직접 타격하는 무기로 원거리 해상전을 벌인 것. 대장군전은 전용화포인 천자총통의 화력을 이용해 선저까지 구멍을 뚫어 접전이 개시되기 전에 배를 격침시키는 근대적 해전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화력상의 우위 속에 이순신장군이라는 걸출한 사령관을 만난 조선 수군은 무패신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안골포 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참패해 전 함대를 잃고 구사일생으로 탈출했던 구키 요시타카(九鬼嘉隆)는 자기 배에 박혀있던 대장군전 1발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 가져다 보여주고서 고이 간직해 가보로 삼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히데요시에게 조선수군은 도저히 이길 수 없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당대 한국의 군사기술이 대단히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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