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火요일에 읽는 전쟁사]관우는 정말 청룡언월도 휘두르고 다녔을까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청룡언월도를 든 관우 모습(사진=중국드라마 삼국 캡쳐)

청룡언월도를 든 관우 모습(사진=중국드라마 삼국 캡쳐)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소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관우(關羽)의 무기인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 보통 무신(武神)이라 일컬어지는 관우 캐릭터의 생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무기다. 관우는 이 청룡언월도와 평생을 함께하면서 수많은 전장을 누볐고, 그때마다 적장의 목을 단번에 베어오며 강한 카리스마를 남겼다.

그런데 실제 역사에 등장하는 관우도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카리스마를 뿜어냈을까? 언월도란 무기가 등장한 것은 빨라야 중국 송(宋)나라 시기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청룡언월도의 모습이 갖춰지고 많이 쓰였던 것은 명(明)나라 이후다. 관우 사후 800년 정도는 지나야 나오는 언월도를 연의 속 관우는 마구 휘두르고 있는 셈이다.
시대적인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일단 무게가 마상에서 휘두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연의에서 청룡언월도는 82근의 무게가 나갔다고 나오는데 82근이면 현재 근수로 계산해도 49.2kg이다. 제 아무리 역도 선수라 해도 50kg 정도 나가는 무기를 한손으로 들고 말 위에서 장작개비처럼 휘두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실제 쓰였던 언월도 무게보다도 훨씬 무거운 수치다. 언월도가 무기로 도입된 조선시대 후기 무술교본인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따르면 언월도 무게는 3근 정도로 2kg 정도 되는 수준이다. 더구나 원래 기병이 쓰던 무기가 아니라 왜군의 일본도에 맞서기 위해 보병들이 주로 쓰던 무기였다.

기병들은 마상에서 전투용으로 쓰기는 무거웠기 때문에 주로 의장용 사열대가 드는 수준이었다. 82근 무게의 언월도를 착용하고 보통 20kg이 넘는 갑옷까지 갖춰 완전 무장한 거인이 올라탄다면 제 아무리 적토마(赤兎馬)라 해도 달릴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등자 모습(사진=위키디피아)

등자 모습(사진=위키디피아)

원본보기 아이콘

또 하나의 문제는 마상에서 도를 휘두르기 위한 발받침인 '등자'가 관우의 생존시기에는 아직 중국에 도입되기 이전이라는 점이다. 현재 중국에서 등자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시기는 4세기 이후인 5호16국 시대로 알려져있다. 관우의 생존시기와는 100년 정도 차이가 난다.

실제 관우가 쓰던 무기에 대한 내용은 사서에 구체적으로 나와있지 않다. 당대 학자인 진수(陳壽)가 쓴 역사서 삼국지(三國志) 관우전 중 백마전투를 묘사한 장면에서 관우가 썼던 무기를 유추해볼 수 있는 장면이 나온다.

"원소(袁紹)가 대장군 안량(顔良)을 보내 백마성에 주둔한 동군태수(東郡太守) 유연(劉延)을 공격토록 했다. 조공(曹公)은 장료(張遼)와 관우를 선봉으로 삼아 안량을 공격토록 했다. 멀리 안량의 깃발과 일산(日傘)을 바라본 관우는 곧 수많은 병사들 속으로 말을 몰아 안량을 찌르고는 그의 머리를 베어 돌아왔다. 원소의 여러 장수들은 당할 사람이 없었고, 마침내 백마성의 포위를 풀 수 있었다"

마상에서 안량을 찔러 쓰러뜨리고 그 후 목을 베었다는 내용을 보면 관우는 당시 기병들이 사용하던 '모(矛)'나 '극(戟)'같은 찌르는 무기를 주로 사용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국지연의의 저자인 나관중(羅貫中)도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극적 재미를 더하기 위해 관우의 무기를 따로 상상해 만들었던 것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조선 후기 이삼(1677∼1735)장군이 사용하던 언월도(사진=문화재청)

조선 후기 이삼(1677∼1735)장군이 사용하던 언월도(사진=문화재청)

원본보기 아이콘

이후 관우의 청룡언월도에 담긴 무신 이미지는 당대 무사들에게 일종의 판타지로 남으면서 언월도는 낮은 실용성에도 꽤 애용됐다. 특히 관우 신앙이 강했던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군은 일본군을 상대로 언월도를 사용하면서 심리적으로 큰 효과를 본 것으로 기록돼있다. 이에 조선에서도 임진왜란 이후 언월도를 군대에 도입하게 됐다.

조선에서는 중국보다 좀 더 작고 가벼운 실용적인 언월도가 선호됐지만 실전에선 잘 쓰진 않았다고 한다. 주로 의장용으로 쓰이거나 힘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다. 북벌을 기치로 강인한 국왕 이미지를 세우려했던 조선 효종임금이 애용했다고 전해지며 사도세자도 언월도를 휘둘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국내이슈

  • 美대학 ‘친팔 시위’ 격화…네타냐후 “반유대주의 폭동”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해외이슈

  •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PICK

  • 제네시스, 中서 '고성능 G80 EV 콘셉트카' 세계 최초 공개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매끈한 뒤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