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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만리]기차가 서지않는 간이역…사랑이 멈춰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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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이별 그리고 설레임…양평 구둔역, 남양주 능내역 여정

능내역의 빛바랜 사진과 낡은 의자들이 운치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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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강과 남한강이 한 몸이 되는 두물머리의 해질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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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철길을 따라 걷는 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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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둔역의 폐철로와 열차(한국관광공사제공)

구둔역의 폐철로와 열차(한국관광공사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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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가득한 능내역과 구둔역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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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

두물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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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기자]옛 역사와 녹슨 철길에 초겨울 햇살이 따사롭게 내려앉았습니다. 오래된 역에는 지난한 세월이 묻어납니다. 빛바랜 낙엽 위로 사연이 겹겹이 쌓여 가고 있습니다. 철길 평행선으로 끝없이 이어진 간이역은 기억의 저편에 있는 기다림의 공간입니다. 또한 만남과 이별 그리고 설레임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에게 잊혀진 이야기는 산이 되고, 우리들에게 버려진 추억들은 나무 되어…'라는 노랫말처럼 간이역은 추억의 장소입니다. 12월의 첫 여정은 그래서 이름만 들어도 여유가 생기고, 추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간이역입니다. 경기도 양평 일신리 구둔역과 남양주 능내리의 능내역입니다. 구둔역은 80년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퇴역한 노병처럼 주름 깊은 은행나무 한 그루, 엔진이 식은 기관차와 객차 한 량, 역 앞을 서성이는 개 한 마리가 간이역의 친구입니다. 능내역은 들고 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폐역 앞으로 자전거길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역사에는 빛바랜 사진과 빨간 우체통, 낡은 의자가 오는 사람들을 맞습니다. 구둔역과 능내역 여정에 빼놓을 수 없는곳이 있습니다. 바로 두물머리입니다. 강물을 붉게 물들이며 지는 해를 보거나 새벽 물안개가 참 운치있습니다.

1940년 4월, 문을 연 구둔역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을 지켜봤다. 한국전쟁이라는 질곡의 세월도 견뎌왔다. 청량리에서 출발한 무궁화호 열차가 지나가던 간이역은
청량리-원주 간 중앙선 복선화 사업으로 2012년 폐역이 됐다.
목조 양식의 구둔역은 역사와 광장, 철로, 승강장까지 등록문화재(296호)다. 천장이 나무로 된 대합실, 사무실, 숙직실 등이 남아 있다. 삐걱거리는 대합실 문을 열고 들어가 승강장과 철길을 걷는 동선이 모두 근대 문화를 더듬는 길이다.
구둔역

구둔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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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내역

능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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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합실에는 열차가 오가던 시절의 시간표와 매표소 유리창 등이 빛바랜 모습 그대로다. 승강장 밖 늙은 나무에는 소원지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청량리행을 알리는 이정표도 햇살을 머금고 철로 변을 지킨다. 멈춰 선 기관차와 객차 역시 철로 한편에서 겨울 역의 아련한 정취를 더한다.

구둔역이 있는 구둔마을은 예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다. 임진왜란 때 한양으로 넘어서는 언덕길에 진지 아홉 개가 있어 '구둔(九屯)'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최근 구둔역은 '사랑역'으로 통한다. 구둔역이 화려한 조명을 받은 것은 수지를 '국민 첫사랑'으로 만든 영화 '건축학개론' 덕분이다. 극중 승민(이제훈)과 서연(수지)의 풋풋한 장면이 담긴 이곳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인기를 끌었다. 얼마전에는 한 예능 프로그램(불타는 청춘)에 다시 등장했다. 김국진과 강수지가 훈훈한 철길 데이트 코스로 선택한 곳이 바로 구둔역이다. 역사옆에는 빨간 벽돌과 나무 한 그루가 어우러진 '고백의 정원'이 있다.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하는 장소다.
양평장이 서는 날이면 북적거리던 구둔역 일대는 이제 한적한 시골 풍경으로 남았다. 기차를 이용하면 구둔역의 배턴을 이어받은 일신역에서 내려 15분 정도 걷는다. 마을 풍경을 감상하며 역까지 한적하게 다가설 수 있다.

올 겨울 구둔역은 변신을 꾀한다. 사무실은 카페로 꾸미고, 고구마피자와 빵 만들기 체험장도 문을 연다. 승강장 옆에는 군불을 쬐며 추위를 다스릴 모닥불 터를 마련할 계획이다.
여행객들이 폐철길을 따라 걷고 있다

여행객들이 폐철길을 따라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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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구둔역에서 벗어나 용문 방향으로 가면 용문산관광단지다. 천년 고찰 용문사까지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 코스가 좋다. 경내의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0호)는 수령과 높이가 국내 최대다.

용문사를 지나 서울방면으로 달리면 능내리 강마을이 나온다. 이곳에 추억의 간이역인 능내역이 있다.

먼 기적소리와 함께 기차가 떠나버린 능내역은 한동안 고독의 대명사로 남았었다. 켜켜이 먼지만 쌓여가던 능내역 일대가 다시 활기를 찾은 것은 남한강자전거길이 열리면서부터다. 역사 앞에는 기차카페가 들어서고 능내1리 주민들로 구성된 마을기업이 간이음식점과 자전거대여업을 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빨간 우체통이 인상적인 능내역 안팎에는 길게 늘어진 줄에 누렇게 퇴색된 흑백사진이 수십 장 매달려 있다. 추억을 찾아 나선 이들이 고향사진관에서 추억의 교복과 교련복을 입고 찍은 사진들이다.

능내역 앞은 정약용이 태어나고 말년을 보낸 곳이다. 다산은 자찬묘지명에서 '이 무덤은 열수 정약용의 묘이다'라고 했다. 열수(洌水)는 한강의 옛 이름으로 능내리에서 태어난 다산은 한강을 무척이나 사랑해 자신의 호로 '열수'를 자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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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구둔역과 남양주 능내역 여정의 마무리는 단연코 두물머리다. 옛날엔 강원도 산골에서 베어낸 나무를 뗏목으로 엮어 정선의 조양강, 영월의 동강을 거쳐 단양과 충주, 여주로 흘러가다 양수리에 오면 떼꾼들도 한 숨을 돌렸던 곳이다.

요즘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만남'의 사연까지 더해져 연인들의 야외 데이트 성지로 자리 잡았다. 산책로와 카페촌이 조성되어 주말이면 강변 조명 아래 은은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이곳의 터줏대감은 수령 400년이 넘는 느티나무다. 높이 30m, 둘레 8m에 500년이나 묵은 이 나무는 한때 사이좋은 할배, 할매 느티나무였지만 홍수로 인해 이별의 슬픔을 겪고는 지금은 할매 느티나무만 서 있다.

새벽녘에 찾으면 두물머리에서 아득하게 피어 오른 안개가 느티나무를 감싸며 밀려드는 장관을 맛볼 수 있다. 해 질 무렵 붉게 물든 두물머리도 빼놓을 수 없다.

남양주·양평= 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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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메모
△가는길=
서울에서 가면 팔당대교를 지나 국도6호선 양평 방면으로 가다 양평읍, 용문읍을 지난다. 이어 345번 지방도 지평 방면으로 가면 구둔역이 나온다. 능내역은 두물머리(서울방면) 방향으로 돌아나오면 된다.

△먹거리=평양냉면 족보에 이름을 올린 맛집 중 한 곳으로, 담백한 국물에 면발이 특색인 옥천냉면(031-773-3575)이 유명하다. 마당(031-775-0311) 은 곤드레돌솥밥정식을 내놓는다. 두물머리길에 있는 나루터家(031-773-6372)는 닭볶음탕과 막국수등을 잘한다. 집에서 직접 만들어내는 순두부와 배추 겉저리 맛이 일품인 조안면 기왓집 순두부(031-576-9009)도 이름났다.

△볼거리=경기도민물고기생태학습관,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세미원, 들꽃수목원, 양평보릿고개마을, 중미산자연휴양림, 중미산천문대, 다산길, 다산유적지, 실학박물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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